방통대 극예술 연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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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오순도순 물러앉아 대화를 나누던 한패의 젊은이들이 갑자기 언성을 높인다.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의 장을 주제로 인간의 탄생과 죽음의 모습을 통해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반전위극 무대.
소품도 장식도 거의 없고 바닥엔 가마니를 짠 허술한 무대지만 격렬한 몸짓, 천장을 찌르는 외침, 험악한 분위기 속에 연극은 연기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한국방송통신대학 극예술연구회 회원들이 연극공연에 몰두하고 있는 서울 신설동 대광고 강당.
강의실과 캠퍼스가 아닌 전파를 통해 맺어진 교우·동창생이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호흡을 같이하기 위해 노력하는 진지한 표정은 강의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지난달 21일에 막을 올린 『작품I』(권순철 작) 공연은 스태프·출연자 등 20여명이 한 덩어리가 되어 두달 동안의 힘든 연습의 산물. 78년11월 창립한 이래 4회째를 맞은 이번 연극발표회는 신입생 환영공연까지 겸하고 있어 더욱 뜻이 깊다.
캠퍼스 없는 대학생-. 회원 모두가 낮에는 직장 일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밤에 2시간씩 모여 연습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고 그만큼 어려움도 많았다.
나이 차도 많고 직장도 제 각각이어서 연습시간을 채매 맞추기가 어렵다. 더욱이 학교로부터 연습장소·예산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각자의 주머니를 털어 모든 준비를 해야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킨다는 동료의식 하나만으로 어려움은 쉽게 극복되었다.
비록 캠퍼스와 강의실은 없지만 라디오가 선생님이고, 가정과 직장·사회가 모두 캠퍼스라는 자부심으로 1인2역을 수행하는 방송통신대학생들은 그만큼 긍지가 높다.
방송통신대 학생들이 함께 모여 동료임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두 번씩 방학에 실시하는 출석수업.
그래서 틈만 나면 서클활동을 통해 서로를 알려고 애쓴다.
학교로부터 비록 정식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이들이 벌이는 서클활동은 바쁜 생활 속에서 메말라 가는 정서를 순화시키고 자칫 흩어지기 쉬운 마음을 합쳐주는 구심점구실을 한다.
극예술연구회 강두원 회장(22·행정학과 2년·시사영어사영업무근무)은 『직장에 매달렸을 망정 어엿한 대학생으로서 낭만을 외면할 수 없다』며 『흩어진 교우들이 모여 활동을 하다보니 더욱 정겨운 동료애롤 느낀다』고 말했다. <한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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