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야 웃자'… 행복을 찍는 사진작가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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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1000명의 웃는 얼굴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 황인모씨가 지난 19일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작품은 다음 달 12일부터 대구 중심가에 대형 걸개로 전시된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자~ 웃어보세요.” “전 덧니가 나서 웃기 어려운데….”

 23일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야외무대. 지나가던 아들과 어머니가 사진을 찍겠다며 차례로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자 사진작가는 “더 웃어 달라”고 주문한다. 어머니는 덧니 때문에 입을 다문 채 빙긋이 웃어보였다. 야외무대인데도 의자 뒤에는 하얀 배경 스크린이 걸렸다. “찰칵!” 셔터를 누르자 이번에는 우산이 씌워진 조명시설에서 번쩍 빛이 터졌다. 길거리에 스튜디오처럼 전문장비가 설치된 것이다. 번쩍거리는 조명을 보고 젊은이들이 모여든다. 사진작가가 무료로 웃는 사진을 찍어 준다는 이야기에 친구·연인·가족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사진작가 황인모(39)씨가 지난 12일부터 대구 동성로에서 웃는 시민 찍기에 나섰다. 그것도 추석 전까지 적어도 2000명을 찍을 계획이다. 지금까지 세 차례 길거리 스튜디오에서 700명쯤을 찍었다.

 “어려움요? 특별히 없습니다. 더 웃어 달라고 계속 말하느라 힘들긴 하지만…. 참여하는 시민들이 웃으며 즐거워하니 저도 즐겁습니다.”

 황씨는 촬영이 끝나면 이 가운데 1000명을 골라 대형 현수막 두세 개에 사진을 인쇄할 예정이다. 주제는 ‘대구야 웃자’. 황씨의 작업은 다음 달 12일 개막하는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의 부대행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600여 명이 들어갈 가장 큰 현수막(가로 17m, 세로 40m)은 비엔날레 기간 시내 한가운데인 동아쇼핑 외벽에 내걸릴 예정이다. 한 사람의 사진 크기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가로 세로 1m씩. 작품이 전시되면 올해 비엔날레는 대구문화예술회관·대구예술발전소 등 실내를 벗어나 시내 전체로 확대되는 의미도 있다.

 이번 행사는 사건·사고가 많은 요즘 시민들을 위해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행인들도 웃는 시민을 보며 덩달아 미소 짓게 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또 그동안 전문가·동호인들만의 잔치에 그쳤던 비엔날레가 시민과 함께 소통하자는 뜻도 담았다.

 경일대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한 황씨는 동시대 이웃이 살아가는 모습과 사라져 가는 것에 관심이 많은 다큐멘터리 작가다. 그동안 진도 학동마을, 신안 비금도 등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마을을 찾아가 일주일씩 머무르며 주민들의 표정을 담았다. 이른바 민중의 초상이다. 작가는 그때마다 노인들의 사진을 무료로 찍어 인화해 주면서 다가갔다고 한다.

2008년 젊은사진가상, 2009년 강원다큐멘터리 사진상 등을 받았으며, 현재 영남대 미술학부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대구=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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