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참전 미용사들 아직도 악몽 속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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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6년 요즘 들어 미국에선 일부 「베트남」참전용사들이 받고있는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푸대접이 새삼스럽게 큰 말썽이 되고 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전쟁터의 처참한 추억을 지우지 못해 환각·환청·무력감 같은 정신병을 앓고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알콜이나 약물에 중독 되고 일자리를 얻기도 어려운 처지다.
미국사람들에겐 「베트남」전쟁이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한번도 공식적으로 패배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75년 4월 「사이공」함락후의 사태는 미국의 자존심을 몹시 거슬리게 했다.
그 때문에 「베트남」전선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애써 참전사실을 감춰왔다. 패배한 전쟁에 개입했음을 인정하는 젓은 큰 수치로 생각한다. 2차대전이나 한국전에 참전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주위에서도 영웅으로 여기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러던 그들이 이제 와서 들고일어난 데는 까닭이 있다. 지난 1월20일 「이란」에 억류됐던 인질 52명이 풀려나자 미국은 온통 환영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마치 개선장군을 맞듯 「카터」전대통령이 서독으로 날아갔고 신임 「레이건」대통령은 그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고생을 위로했다.
신문과 TV도 미국독립 2백주년 기념행사 이상으로 흥분했었다.
미국사회가 열병을 치르고 있을 때 「베트남」참전용사나 그 가족들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 참전용사의 부인은 『「베트남」에서 돌아와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푸대접을 받고있는 내 남편과 같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미국이 한 것은 무엇인가』고 분해했다.
미국이 「이란」과 「베트남」에서 치욕적으로 쫓겨나기는 마찬가지인데 「이란」인질을 영웅으로 만든 미국이 왜 「베트남」참전용사에게는 죄인대접을 하느냐는 항의였다.
그 부인의 투고가 신문에 실리자 여론은 모든 국민의 고통과 영광은 함께 나누어 가져야한다는 방향으로 흘렀다.
게다가 「레이건」행정부가 예산삭감정책의 일관으로 제대군인들에 대한 연방보조금 지불을 일부 줄이기로 한 것이 반발을 불러일으킨 직접 원인이 됐다.
미 행정부는 최근 2억5천만 달러 규모의 제대장병 지원계획을 마련하면서 90개 지방상담소의 경비 1천2백만 달러를 깎았다.
가장 최근의 월남제대 장병까지도 아무런 문제없이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있기 때문에 상담소 기능을 축소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행정부의 독립기관인 제대장병 관리국이 73년부터 8년간 조사한 결과 월남제대 장병의 상당수가 술과 약물에 중독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다 체포되고 불안·우울·환각 등 정신질환자라는 새 사실이 밝혀졌다.
또 제대 후 학교를 중퇴하거나 직장생활에 적응 못해 실직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돌아와 지금 30대가 된 그들은 일상의 생존경쟁에서도 밑바닥을 기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국민 중 3천여만명이 2차 대전이후의 제대장병이다. 그중 60만명이 여성이다. 또 2백80만명이 월남참전 용사들이다. 이들은 「이란」인질사건 이후 국가에 대해 자신의 불행을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뉴욕=김재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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