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사의 자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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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원 저것도 노래라고 부르나.』 TV나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리던 손길을 멈추고 짜증스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들 주변에서 너무나 자주 본다.
우리 대중가요가 애당초 영혼을 감동시킬만한 노래는 기대하지 않았다 해도 적어도 참고 들어줄 만한 노래조차 없다는 「뉘앙스」가 이런 불만스러운 목소리 속에 가득하다.
한국대중가요가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대중가요의 창조주체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레코드」회사다. 그런데 「레코드」사측은 한결같이 가수와 작사·작곡자능력의 빈곤에 그 원인이 있다고 설명하려든다.
물론 일리는 있다. 그러나 과연 그들만의 책임일까. 대중가요에서 유능한 인재들을 발굴하지 못한 근본원인은 「레코드」사의 기획부재 현상과 제도적 모순에 있다.
다소 지나친 표현이 되겠지만 한국의 「레코드」사는 학교건물과 학생만 있고 선생이 없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음반의 기획 및 유능한 인재의 발굴작업을 하는 문예부(A&R)가 「레코드」사의 심장인데도 등록사중에는 몇 회사를 제외하고 문예부의 형태조차 없는 「레코드」사가 거의 대부분이고 있다해도 재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기현상은 「레코드」사 등록기준의 모순에도 있다. 「레코드」사를 등록하려면 「프레스」시설 8대 이상을 설치한 공장, 「스튜디오」를 갖추어야하는 조건이 명시되어있다. 결과적으로 재능과 의욕은 있으나 자본력이 없는 제작자들은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자본력 있는 상인들만이 「레코드」사를 가질 수가 있게된 셈이다.
결국 이들만이 가요를 제작할 수 있는데 이들은 또 수익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국내가요제작을 기피하고「오디오」제품보급으로 수요가 급증한 「라이선스·디스크」제작에만 몰두하고있다.
가요를 위축시키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외국음반복제업에만 몰두하는 일부 「레코드」사인 것이다. 시설 기준만 갖고「레코드」사의 자격요건을 따진다면 차라리 더 강화해 문화의 기여도도 자격요건에 포함시키든가 아니면 출판의 경우처럼 문호를 개방, 「레코드」사와「프레스」공장을 별도의 것으로 인정하든가 하는 어떤 조처가 있어야만 가요계가 활기를 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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