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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실업자와 사회불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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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가을부터 북경과 상해에는 모양이 조금 달라진 인력거가 다시 나타났다. 자전거 오른쪽에 한사람이 편안하게 탈수 있도록 의자장치를 부착한 것이다. 「나치」관계의 영화에 독일병사들이 자주 타고 다니는 2인용 「사이카」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중공당국이 외국관광객으로부터 외화를 한푼이라도 더 긁어내자고 옛 중국의 유물을 부활시킨 것이 아니다. 대도시에서 수년간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들이 도시의 교통지옥상을 보고 생각해낸 돈벌이의 하나다.
중공은 건국이전의 비참했던 상황을 되새길 때 상징적으로 「쿨리」(고력)와 인력거를 지적해왔다. 「북경주보」지는 그런 「쿨리」와 인력거의 재등장을 실업해소의 긍정적 측면으르 보도했다.
한 때 중공경제를 요리했던 당부주석 이선념(당시 부수상겸직)은 79년 4월 2억5천여 만명의 도시인구중 취업노동자는 9천9백만 명이고 실업자는 2천여 만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중공은 노동자와 실업자라는 용어를 쓸 때는 농민은 제외한다.
79년과 80년의 정부통계는 각각 7백50만 명과 7백만 명의 노동자가 새로 취업한 것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북경의 한 고위경제전문가는 만성적인 적자운영에 허덕이던 기업 5만여 개가 경영합리화를 내건 정부시책에 따라 지난해 문을 닫아 1천여 만명의 신규실업자가 생겼다고 최근 말했다.
전체적으로는 「취업을 기다리는 청년」(실업자의 중공식 표현) 문제는 별로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상해의「해방일보」가 『졸업은 곧 실업』이라고 지적할 만큼 해마다 새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나게 많은 중·고생들(80년의 경우 1천7백 만 명)의 취업문제까지 생각한다면 사태는 매우 심각하다(「홍콩」의 「칠십년대」지).
초군(북경시 경찰부국장)은 지난2월 「북경주보」와의 회견에서 실업자사태가 청소년 범죄를 격증시키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길거리를 헤매면서 갖가지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 북경경찰의 최대문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북경경찰통계는 청소년범죄가 문화혁명이전에는 전체범죄의 25%에 지나지 않았으나 77년과 80년 사이에는 80%나 되었다고 전하고있다.
중공언론은 지난 2년간 그들이 저지르는 시위·절도·강도·폭행·약탈·강간 등의 사건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화교들이 북경 등지의 대도시를 방문할 때 친지나 안내원들로부터 제일 먼저 듣는 말이 『밤에 혼자 외출하지 말라』는 경고라고 「홍콩」의 「쟁오」이나「동향」지 등은 전한다.
이 경고를「뉴욕」이나 「홍콩」정도에서나 들을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충고로 여기고 외출했던 화교 마유생은 지난해6월 북경의 천안문광장에서 청년2명에게 팔뚝시계를 강탈당했다.
80년 7월 중순 남부 해남도에서는 실직상태에 있던 제대군인들이 주민들을 선동하여 무기고를 습격하고 탈취한 무기로 현정부기관을 실력으로 점거한 사건(「홍콩」의 「명보」지 보도)이 일어났다. 지난12월말에는 실직청년 4천여 명이 상해시 정부청사 앞에서 일자리를 달라고 사흘간이나 연좌농성을 하여 취업시켜 주겠다는 당국의 약속을 받아냈다.
『큰 소동을 벌이면 쉽게 해결되고, 작은 소란을 일으키면 어물쩡 넘어가고 침묵하면 아무 것도 해결되지 못한다』는 새로운 유행어가 일부 지방에서 떠돌게된 배경이다.
특히 대도시에 방황하는 많은 실업청년들은 과거 노동의 현장실습이라는 구호(하방운동)아래 도시에서 농촌으로 쫓겨갔다가 몰래 도시로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취업은 물론, 식량배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상해에만도 이렇게 불법적으로 도시에 되돌아온 청년이 40여만 명이나 된다고「문회보」는 추산했다.
지난해 요령성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종의 자영성격을 띤 소규모협동기업의 장려와 여성취업자의 자택대기조치를 취했다. 자택대기발령을 받은 여성근로자들은 기본급의 70%를 받고있지만 수당과 상여금의 혜택을 보지 못해 실제로는 수입이 반감됐다고 불만이다. 요령성은 다른 성시와 마찬가지로 80년에 자전거나 농기구 또는 가전제품의 수리점·탁아소·식당·여관·이용원·구두수선점 등 대민봉사업을 적극 장려하여 30여 만명의 실업자를 구제했다고 요령일보는 전했다.
「거리의 공업」이라고 이름 붙인 이런 업종이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는 있지만 실업자해소의 근본대책은 되지 못하고있다. 실업상태의 젊은이들은「서비스」산업을 천한 직업으로 인식하여 그런 업체에 취업하길 꺼리는 경향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문회보」보도) .
그러나 취업해야할 인구는 늘어나는데 일자리는 그에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자본주의사회의 노동자입장에서 본다면 부럽기 짝이 없는 종신 취업제도(철반완)와 기업경영의 무사안일제도(대과반)의 보강에 있었다고 중공관료들 스스로가 분석하고 있다.
일을 열심히 그리고 뛰어나게 하든 말든 보상도 감봉도 없이 종신토록 취업이 보장된 것이 이른바 철반완(쇠로 만든 밥공기)제도다.
또 기업경영이 좋든 나쁘든 상금도 없고 책임추궁도 없는 것이 대과반(큰솥에 많이 들어간 밥)제도다.
등소평 체제가 이 모순점을 알고 지난해 9월 은퇴제도와 경쟁체제의 수립을 도입했지만 그런 제도에 익숙해진 노동자와 관리들이 전국적으로 그제도의 시행에 상당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최근의 북경소식이다. <이수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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