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브루노」씨>
『조국을 버리다니 어디에 그런 편리한 조국이 있었나요? 조국은 버렸다 주웠다하는 건가요?』 「히가시야마」의 모처럼의 권유를 저버리는 김에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버릴 수 있는 조국이 있다면 그것은 애당초에 지니지 않았던 조국이지요. 지니지 않았던 조국을 어떻게 버린단 말인가요?』 「히가시야마」는 세상에 별 잠꼬대 같은 소리를 다하는 벽창호도 있다고 속으로 나를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비애와 절망 속에서도, 암담했던 그 경제적 상황 속에서도, 조국에 대한 신앙하나를 팔지 않았던 내 자신을 장했다고 생각한다. 겹겹이 회한에 둘러싸인 70여년의 생애이기는 하나, 「코즈머폴리턴」사의 권유를 물리칠 수 있었던 이런 용기가 내게 있었다는 것은 백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쉽게 말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나, 그런 경우를 당해보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아마 이해가 가지 않으리라.
묵혀 두기로 한 그 시절의 얘기 중에서 한 두개만 추려 두기로 한다.
고철장사로 성공했다는 교포 모씨의 아들로 「와세다」(조도전)대학엘 다니는 학생이 있었다. 「라이카」니 「콘탁스」니 하는 고급「카메라」를 몇 대씩 가진 꽤나 유복한 청년인데다 생김생김도 미끈한 2세였다.
우연한 일로 그 댁에 들렀다가 그 학생을 만났다. 몇 마디 문답이 오가다가 내가 물었다. 『충무공을 아느냐?』고-.
학생은 서슴없이 모른다고 했다. 『이순신은?』하고 고쳐 물었다.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몇몇 조상들의 이름을 들먹이다가 단념했다. 내 조상이나 내향토의 문화에 대해서 이 학생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깜깜 이었다.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활까지는 그런 대로 지나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 직장이니 결혼이니 하는 문제와 직면했을 때, 일본인이 아닌 제 자신의 위치를 비로소 발견하게 되리라. 그때 이 학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향토에 대한 긍지, 조국에 대한 신앙 없이 이 젊은이들은 일본이라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일본의 이런 2세, 3세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일본에 발이 묶여있는 터라 교포자제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하지 않겠는가?
어디서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맨주먹 하나만으로는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주일미대사관 직원인 「사이또오·죠오지」(제등양흡=현 자목기독대학장)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서울서 온 USIS의 「미스터·브루노」가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영문인지를 모른 채 다음날 「사이또오」와 동행해서 「브루노」씨가 지칭한 제국「호텔」로 갔다. 「이탈리아」계의 미국인이라는 「브루노」씨는 아직 청년 티가 가시지 않은 순진한 인상이었다.
점심을 대접하면서 「브루노」씨는 「보이」를 시켜서 자기 방에서 책 꾸러미를 여러 차례 운반시켰다. 일일이 「카드」를 붙인 한국의 문학지며 신간서적들이 2, 3백권은 됐을까?
『이걸 당신께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브루노」씨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선뜻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 내게 주는 거지요?』 『이 중에서 당신 마음에 드는 글을 무엇이건 번역해서 일본에 소개해 줍시사는 겁니다. 오늘날의 한국을 좀 더 일본에 많이 알려야하지 않겠어요?』
「사이또오」씨가 통역하는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브루노」씨에게 되물었다. 『그건 누구의 생각입니까? 한국사람들입니까? USIS입니까? 아니면 「브루노」씨 당신입니까?』
「브루노」씨는 언하에 『그 셋 모두랍니다!』면서 아주 멋진 대답이나 한 것 같이 씽끗 웃었다.
내 말이 좀 뾰족해졌다.
『동경까지 이런 것을 실어온 당신의 수고는 알겠소 마는 누군가가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했나봅니다. 쓸 자료가 없어서 내가 글을 못쓰고 있나요? 나는 이래봬도 한다한 요리사입니다. 요리를 만들어 담는 것까지는 문제없어요. 문제는 그 요리를 누가 먹어주느냐? 그겁니다. 일본은 한국문화니 한국의 문학이니 하는 그런 요리를 별로 먹고싶어하지는 않습니다. 먹기를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입에다 요리를 쑤셔 넣는 것-그게 제일 힘들고 어려운 고행입니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관심도가 1백%라면일본의 대한관심도는 1%도 못됩니다.
그런 희박한 관심도 속에서 내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이식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를 안다면 이런 책들을 일부러 보내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죄 없는 「브루노」씨에게 나는 짜증을 터뜨렸다. 꾸중을 듣는 중학생처럼 맥없이 내 얼굴을 쳐다보는 「브루노」씨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브루노」씨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계속>계속>미국인>
(3059)|<제72화> 비규격의 떠돌이 인생(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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