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멕시코 배구 대표팀 박지국 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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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미 산유국 「멕시코」에서는 「코레아」하면 박지국씨 (49)로 통한다.
이 때문에 「멕시코」를 방문한 한국인들은 「멕시코」인들로부터 『「지국·박」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황하기 일쑤.
외국인 「코치」로서는 드물게 「멕시코」 여자 대표 팀을 8년 동안 계속 맡고 있을 뿐 아니라 선수 선발·배구 기술 보급 등을 도맡아 배구하면 그를 연상할 정도로 「멕시코」 배구를 주름잡고 있다.
인천고·서울대 사대의 선수 생활을 거쳐 중앙여고·보안사 등에서 감독 생활을 해온 그가 「멕시코」에 진출한 것은 73년9월.
배구 초창기에 「멕시코」에 진출한 그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데다 생활 풍습의 차이 때문에 큰 곤란을 겪었지만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선수들의 이탈이었다.
경기 위주의 배구에서 수비 위주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작하자 연습에 안나오는 선수들이 속을, 한 달만 지나면 고작 5명 정도가 남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선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선수들과 같이 합숙하며 생활, 배구에 재미를 붙이도록 심혈을 기울었다.
박씨의 헌신적인 노력이 결실을 보기 시작한 것은 76년부터. 3년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전력이 급상승한 「멕시코」는 미주 지역 대회에서의 만년 꼴찌에서 탈피, 당당히 6위로 올라 「멕시코」를 깜짝 놀라게 했다.
「멕시코」 배구 협회는 그의 헌신적인 노력을 높이 사 일본 등에서 무보수 「코치」를 파견하겠다는 제안을 일축, 그에게 「주니어」 대표 팀은 물론 순회 지도자로 선임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줬다.
이때부터 박씨는 1년에 반 정도는 「멕시코」 전역을 돌며 순회 지도. 어느 곳에서나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특히 「멕시코」 배구 협회장이자 국제 연맹 (IVF) 부회장인 「아코다」씨의 절대적인 신입을 얻고 있은 그는 배구 지도자로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으며 한국 배구도 그의 측면 지원을 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79년9월 「멕시코」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남자 배구가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도 그의 뒷바라지는 눈물겹도록 헌신적이었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은 선수들을 직접 자기 차로 몇차례씩 왕복하여 경기장과 숙소로 날랐고 김치·밥 등도 직접 공급하는 등 각종 뒷바라지를 도맡았다.
한국팀에 대한 헌신적인 뒷바라지는 비단 배구뿐 아니라 「복싱」·축구 등 어느 종목이나 마찬가지여서 「멕시코」인들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박씨는 78, 79년에 「멕시코」 여자 대표 팀을 이끌고 내한해 전지 훈련을 가져 간접적으로 「멕시코」에 한국 배구의 우수성을 심어주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시민권을 획득한 박씨는 월 3천「달러」 (한화 2백만원)를 받으며 「멕시코시티」의 대표 팀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교육 문제로 부인과 아들 2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임병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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