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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나비' 가슴에 단 교황 … 위안부 할머니들 위로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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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마지막 날인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초청해 위로했다. 강일출 할머니(오른쪽)가 교황에게 전달할 고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못다 핀 꽃’ 그림을 들고 있다. 왼쪽은 김군자 할머니. [사진 나눔의집]

“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 조용히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나비 모양의 배지를 교황에게 건넸다. 일명 ‘희망 나비’ 배지다. 나비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비롯한 모든 여성들이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염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 할머니는 배지의 의미를 교황에게 설명했다. 교황은 할머니에게 받은 배지를 자신의 제의에 달았다. 금빛 나비는 미사가 끝나 교황이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때까지 가슴 한쪽에서 반짝거렸다.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는 김복동·강일출·이용수·김군자·길원옥·김양주·김복선 할머니 등 7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참석했다. 당초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거주 중인 할머니 3명만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별도로 참석을 희망한 4명이 추가됐다. 현재 전국에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54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가슴에 달린 ‘희망 나비’ 배지. 김복동 할머니가 선물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교황은 미사 직전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할머니들의 손을 붙잡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일부 할머니는 교황과 손을 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부탁하며 눈물을 흘렸다. 김복동 할머니는 미사가 끝난 뒤 “우리의 사연을 교황께서 잘 들어주신 것 같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참석한 할머니들 모두 고령인 데다 거동이 불편해 일반 의자 대신 휠체어에 앉아 미사를 드렸다. 명동성당 측은 할머니들을 위해 기존 앞줄 좌석을 모두 치웠다.

 강일출(87) 할머니는 고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못다 핀 꽃’ 그림을 든 채 미사에 참여했다. 이 그림은 1995년 김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린 작품이다. 그림은 교황방한위원회를 통해 교황청에 전달됐다. 이용수(87) 할머니는 “교황님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설레는 마음에 며칠 동안 잠 한숨 제대로 못 잤다”면서 “교황께서 묵주를 주셨는데 이 묵주를 보며 항상 기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교황방한위원회 측은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별도 인사 시간은 당초 계획에 없었다”며 “교황께서 스스로 먼저 다가가 할머니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경청했다”고 밝혔다.

 이날 사전에 초청장을 받지 못한 천주교 신자들은 꼭두새벽부터 명동성당을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다렸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2000여 명의 인파가 성당 바깥을 가득 메웠다. 하나같이 기대와 설렘이 가득 찬 얼굴이었다. 오전 8시50분쯤 교황이 탄 차량이 명동성당 앞길로 들어서자 모두 “비바 파파(교황 만세)”를 연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환영 인사에 화답하듯 창밖으로 연신 손을 흔들었다. 경기도 용인에서 온 송정숙(68·여)씨는 “광화문 시복식에서는 서울시청 앞에 앉아 있어서 교황님을 제대로 못 봐 안타까웠다”며 “오늘 교황님 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축복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교황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천주교 신자부터 관광객들까지 외국인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고석승 기자 윤소라(숙명여대 영어영문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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