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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구성진 민요로|노고를 잊는다-남제주군 안덕면 덧수리 「민요마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삼다(바람·돌·여자) 삼무(도둑·대문·거지)의 섬 제주도.
자람 자랑 웡이 자랑(자라자라 잘도 자라)
우리 애기 착한 애기
금을 준들 너를 주랴
은을 준들 너를 주랴
나라에선 충성동이
부미(부모)에겐 효자동이
일가방상(친척) 화곡동이
자랑자랑 윙이 자랑.
아기구덕(바구니)을 흔드는 아낙의 자장 노래가 물 사람에겐 낯설게만 들린다. 제주도 날씨는 하루에도 열두번 변하고 바람은 씨와 함께 놓금 날려버린다.
화산토길 때문에 음료수가 귀하고 개울은 무수천(무수천). 섬을 울타리로 악조건의 자연속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땀과 한(한), 정애(정애)의 감정을 독특한 방언에 실어 노래로 불렀다. 제주도 민요엔 그만이 지닌 생명이 있고 원색(원색)의 감정이 서려있다.
남제주군 안덕면 덕수리 새당(신당) 마을은 탐유의 민요가 포도알처럼 얼려있는 삼오마을」-.
현재 기록으로 남아있는 제주민요는 1천5백여 수. 남자들이 부르는 남요(남요)보다 여요 (여요)가 더 많고 오락가·만가(만가)·근로가·자탄가·정가(정가)·경세가(경세가)·타령·동요·토속가·문답가 등 종류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 마을은 바로 노동요의 고향.
『불미 불엉 담배 먹자(풀무 불어서 담배 피우자)
동서 양착(양쪽) 새갈르민(고르게 하자)
즐던 정신 바짝 찰령(차려)
이날 밤을 시어나보자.
솥을 만들 때 부르던「불미(풀무)노래」는 이곳에서 30년 전까지 성업을 이루던 가마솥 공장에 얽힌 근로의 노래. 마을의 가마솥 역사는 2백여년.
솥 공장이 지금처럼 현대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쉿물을 녹이는 용광로에 바람을 집어넣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장정 10여명이 풍기(풍기)에 달라붙어 밤낮으로 3∼4일 동안 계속 풀무질로 바람을 불어넣었다.『무쇠 녹안(녹아서)냇물이고/내 위로 내리는 믄은/오장육부 자진(갖은)물이여』하고 부름만큼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주민 허승옥 옹(81)은『우리 하루방들(할아버지들)은 중노동의 괴로움을 노래로 잊으려 했다』며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선대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가 새삼스러워진다고 한다.
새당 마을이 보유하고 있는 고유민요는「불미 노래」와 더불어「멀고래 드리는 소리 (방앗돌 굴리는 노래)」「줄 놓는 노래(새끼 꼬는 노래)」「사듸소리(김 매는 노래)」등 10여곡.
「멀 고래 드리는 소리」는 지난해 전국 민속 경연 대회에서 초연(초연)으로 대통령상을 받을 만큼 가락이 구성지고 규모 또한 웅장했다.
이 노래는 제주 특유의 연자방앗 돌을 산에서 다듬어 마을로 끌고 오면서 불렀던 노래다. 연자방아는 창돌(밑돌)의 크기가 직경3m, 두께50∼80cm이며 맷돌(웃돌)은 직경1m20cm, 두께 50cm 내외로 무게는 약5t. 장정 1백여명이 동원되어 길이 50m, 직경 10cm쯤의 칡 밧줄 2개로 맷돌을 매달아 끌어왔다.
방앗놀이 나는 산과 마을간의 거리는 보통 10∼20리. 끌어오는데 2∼3일이 걸리는 대 역사(대역사)다.
고령의 허 옹이 구성지게 앞소리를 부른다.『야아호으 에헤야아 에에헤 활동같이 굽은 질(길)로 활대(화살)같이 날아든다. 천년만년 자만(자던) 둘도 제자리로 들어오는구나. 요만한 일꾼이문 삼방산도 굴려오키여. 답기단보난(담기다보니)으 마을에 다들어 왔져.』한가락이 끝날 때마다 1백여명의 장정들이 목청을 돋우어「야아호오 에헤야아 에에헤를 되풀이 한다.
이들의 고유한 가락이 되살아난게 불과 4년 전의. 종민속제가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4·3폭동, 6·25사변 등 혼란속에 생활에 쫓긴 주민들은 거의 잊다시피 했다.
민요 찾기에 앞장을 섰던 이장 송안옥씨(41), 주민 고인민(43) 윤일부(40)씨 등은『이 민요를 자손만대 물려줘야 하겠다』며『무슨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 기회에 우리들의 노래를 찾자는 것』이라고 힘주었다. 주민들의 호응도 대단하다.
주민들은 틈나는 대로 마을회관에 모여 동네 노인들을 모시고 연습을 한다. 또 국민학교 운동회·신정·추석 등 명절이나 마을에 대행사가 있을 때는 주민들이 그네들 민요를 부르며 흥을 돋운다.
무슨 기록이 있는게 아니라 이렇게 구전으로 전해온다.
『할아버지들이 하던 소리를 하다보니 그들의 생활상을 알만하다』는 김성찬씨(32)는 20, 30대 젊은이들이. 연습에 열심히라 다행이라고 한다.
민요의 작자는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 구태여 알려고 할 것도 없다. 여러 세대 여러 사람들이 점을 합친 서민의 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더우기 제주는 때묻지 않았기에 서점이 더욱더 원색적인지 모른다.
『돗쾡잇바람(광풍)이는데 재기재기 갑서(어서어서 가시요)』허 옹의 구성진 가락이 귀에 여운으로 남는다.【남제주=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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