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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머리맡에 『한국천주교회사』 있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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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내년 여름에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바티칸에서 교황 방한을 기념하기 위해 이 책을 출판하고 싶습니다.”

 한동일(44·사진) 신부가 교황청 바티칸 출판사로부터 이런 연락을 받은 게 지난해 12월이다. 그로부터 약 8개월 후 지난 4일 이곳에서 이탈리아어로 『한국천주교회사』가 발간됐다. 바티칸 출판사는 성직자 가운데서도 학식이 높은 주교·추기경들의 저서를 주로 펴낸다.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이 머무는 서울 궁정동 교황청 대사관 내 교황의 숙소에도 이 책이 놓여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아들로 태어난 교황은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를 특히 유창하게 구사한다.

 지난 15일 만난 한 신부는 책의 표지부터 설명했다. “서울 혜화동 성당에 걸려 있는 103위 한국 순교 성인화입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 시성(諡聖)된 분들이지요.”

 원래 한 신부는 교황 방한 이전부터 이탈리아어로 한국 천주교회사를 소개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2012년 이탈리아 현지 신부님으로부터 ‘한국의 천주교 역사를 소개하는 책이 없으니 써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2004년 박사학위 논문을 꺼내어 다듬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바티칸 출판사와 연락이 닿았다.

교황청 내에서는 교황 방한 이전부터 한국 천주교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 천주교는 선교사 없이 사람들이 직접 받아들였기 때문에 늘 한국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현지 가톨릭 뉴스통신사인 제닛은 이 책을 “한국 교회를 종합적인 측면에서 이탈리아어로 소개하는 최초의 권위 있는 책”이라고 평했다.

 현재 국내에는 100부가 들어와 교황 숙소를 비롯해 교황청 대사관에 6부가 비치돼 있다. 또 가톨릭 아시아청년대회에 참가한 각국 추기경과 주교들에게 선물로 증정됐다.

 한 신부는 이탈리아어·라틴어에 능통한 바티칸대법원, 일명 로타 로마나(Rota Romana) 변호사다. 광주가톨릭대와 부산가톨릭대에서 각각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2000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2001년부터 교황청이 세운 라테란대학교에서 교회법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세례는 동성고 재학시절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받았다. “제 세례명이 구약시대 예언자·판관 역할을 했다는 ‘사무엘’입니다.(웃음)”

 2004년 바티칸대법원 사법연수원에 입학해 2010년 최종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현재 이탈리아 법무법인에서 바티칸대법원 전담변호사로 있으면서 동시에 서강대에서 라틴어를 강의한다. 지난 4월에 자서전 『그래도 꿈꿀 권리』(비채)가 나왔다.

 그는 로마에 있으면서 3명의 교황을 지켜봤다.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그는 최근의 바티칸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바티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다 바뀌었어요. 수위까지도요. 태도가 좀 더 겸손해졌습니다. 지도자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 조직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글=위문희 기자, 사진=이영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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