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일어나, 친구야! 짜장면 먹으러 가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8호 30면

새벽에 차를 운행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을 때 기사는 의자 등받이 위에 가지런하게 널려 있는 양말을 본다. 그 뒤로 남방 셔츠, 러닝 셔츠, 바지가 줄이라도 맞춘 것처럼 차례대로 널려있고 맨 뒷자리에는 그 옷들의 주인일 청년이 소년처럼 자는 모습을 본다. 버스 운행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청년을 깨웠지만 기사는 무척 미안해 했다고 한다. 너무 달게 자는 사람을 깨운다면서.

그 새벽에 버스기사가 보았을 때처럼 30년 전의 청년은 지금 누워있다. 부천 순천향대학병원 별관 6층 2609호실. 6년 전 사고로 쓰러진 후 몇 번 고비를 넘기고 재활치료를 받으며 호전되고 있었는데 얼마 전 다시 쓰러진 것이다. 우리를 보자 그는 소년처럼 활짝 웃는다. 나는 그를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학교는 달랐지만 문학을 좋아해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를 좋아하고 따랐다. 물론 그가 쓰는 시도 좋았지만 사람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그가 있는 자리는 항상 기발하고 신나는 상상으로 들썩였다. 그는 재미를 발명하는 사람 같았다.

30년 전 이야기를 하자 친구는 몇 번이나 파안대소한다.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은가 봐요.” 그의 손을 주물러주며 선정 씨가 말한다. 선정 씨는 6년째 아픈 그의 곁을 지키는 보호자이자 간병인이며 통역자다. 우리는 도저히 모르는 그의 웅얼거림을 다 알아듣고 그의 눈썹을 긁어주거나 몸에 물을 분무해준다. “다 같이 짜장면 먹으러 가자고 하네요.” 그는 음식을 입으로 먹을 수 없다. 코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이유식 같은 것을 공급받고 있다. 선정 씨가 안 된다고 달래도 막무가내다. 친구의 크고 맑은 눈에는 갈망과 좌절과 원망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30분쯤 지났을까 우리가 이제 일어나려고 하자 그는 또 무어라 웅얼거린다. “자기도 일어나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가 배웅을 하겠다고 하네요.” 현재 상태로는 무리라고 선정 씨도, 아내와 나도 그를 달랜다. 친구는 막무가내다.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오른쪽 팔을 들어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한다. ‘슈렉2’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을 하고 말이다.

간신히 그를 달래고 병원을 나서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옛날에 그가 추천해줬던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꺼내 읽는다.

“같은 시대와 같은 집단의 사람들, 같은 사건을 겪고 같은 문제를 지니거나 회피하는 사람들은 같은 입맛을 갖고 있다. 그들은 서로 연루되어 있고 그들 사이에는 같은 시체들이 가로놓여 있다.”

그와 나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 같은 사건을 겪고 같은 문제를 지니거나 회피했다. 주로 그가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편이라면 나는 회피하는 쪽이었지만. 어쨌든 우리 사이에는 같은 슬픔과 고통들이 가로놓여 있다. 우리는 서로 연루되어 있다. 내가 탄 버스 창 밖에도 그가 누워있는 병실 창 밖에도 똑같이 내리는 비처럼. 우리는 같은 입맛을 갖고 있다. 둘 다 짜장면을 좋아하는. 그때 아내가 창 밖을 가리킨다. “저기 좀 봐요. 쌍무지개가 떴네.” 정말 창밖에는 비가 쏟아지는데 저 멀리 크고 색깔이 분명한 무지개가 쌍으로 떠있었다.

그러니까 상아, 열심히 건강해져서 우리 짜장면 먹으러 가자. 단 계산은 그대가 하고.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