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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는 자애로움에 … 기댈 곳 없던 시민들 ‘교황 앓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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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호 06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 미사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 내내 대한민국은 교황에게 빠져들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감동했고, 소탈하게 웃는 모습에 모처럼의 시름을 잊었다.

[우리 곁에 선 프란치스코] 교황 신드롬에 빠진 한국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교황 앓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세월호 사고, 군 병사 구타사망 사건, 끝이 보이지 않는 정쟁과 같은 악재가 끊이지 않던 대한민국에 좌절했던 국민이 교황의 미소와 손길에서 위로를 받는 모습이다. 인터넷에서는 교황의 자애로움에 빠져들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교황 관련 카페가 20개 넘게 생겨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용기가 아닌 전세기를 타고 방한한 사실을 빗대서 이름을 단 ‘교황에게 에어포스원은 없다’ 등의 카페가 대표적이다.

서점가에선 교황 관련 서적들이 인기를 끌었다. 16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7월 238권 팔렸던 교황 관련서들이 지난달에는 2858권이 팔려 10배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교황 자리에 오른 뒤부터 지난 6월까지 사람들에게 전한 위로와 가르침을 담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 등이 주목받았다.

정쟁만 일삼는 현실에 힐링 효과
서울 명동성당 성물방(聖物房)에는 교황 기념품을 사러 온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교황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티셔츠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었다. 손님들이 “교황을 가까이서 모신다는 생각으로 티셔츠를 구입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교황을 본뜬 미니어처 석고상이나 미사보, 손수건도 물건을 가져다 놓자마자 동날 정도로 팔렸다. 교황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스티커와 책갈피, 십자가도 고객이 많이 찾는 성물이었다.

방한 기간 내내 보여준 소탈함과 스스럼없는 모습도 한국인들에겐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대표적인 게 배기량 1600cc인 준중형차인 쏘울을 ‘포프모빌(Pope Mobile)’로 활용한 것이다. 16일 직장인 김성호(39)씨는 “교황처럼 평생 타인을 위해 희생해오신 분도 쏘울을 타는데 정쟁만 일삼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뭘 했다고 나랏돈으로 에쿠스 같은 대형차를 타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교황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고속철을 타보았다는 말에도 국민은 미소 지었다.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대전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던 교황은 기상 사정 등으로 인해 계획을 바꿔 헬기 대신 KTX를 이용했다. 교황청 대변인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께서는 (모국인) 아르헨티나나 이탈리아에서 한 번도 고속철을 타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처음 고속철을 타고 대전을 가 기뻐하셨다”고 말했다.

16일 서울역은 이른 새벽부터 시복식 미사 참석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가톨릭 신자들로 붐볐다. 교구별로 특별열차나 관광버스를 전세 낸 곳도 있었다. 광주광역시의 광주대교구는 무궁화호 특별열차 10량을 전세 내 신자들의 편의를 돌봤다. 광주대교구에선 850명의 신자(9개 성당)가 이번 시복식 미사에 초대됐다.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는 서울역 등을 이용해 상경한 신자를 돕기 위해 각 기차역과 광화문광장을 오가는 관광버스 수백 대를 배치했다.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후에도 신도 늘어
교황의 이번 방한이 천주교 신도를 늘리는 데도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종교계는 본다.

실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했던 1989년에도 비슷한 효과를 경험했던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전에도 천주교 신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제사를 부정하지 않는 등 배타성이 덜한 데다 성당이 주는 특유의 포근한 느낌이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갖게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발행한 ‘한국천주교회통계 2013’에 따르면 한국 천주교회 신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544만2996명으로 전년 대비 1.5%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정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는 95년 295만1000명에서 10년 만인 2005년엔 514만6000명으로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는 다른 종교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양상이다. 개신교의 경우 95년 876만 명이던 신자 수가 2005년 861만6000명으로 다소 줄었다. 불교 역시 95년 1032만1000명에서 2005년 1072만6000명으로 신자 수가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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