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신문기사도 기계가 쓰는 시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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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프로야구 심판들 사이에 “기계가 주심이고 심판은 부심으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말이 유행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오심 논란을 없애기 위해 ‘심판합의제’를 도입한 걸 빗댄 얘기다. 홈런인지 파울인지 세이프인지 아웃인지, 삽시간에 벌어지는 상황을 불완전한 인간의 ‘눈’ 대신 비디오라는 기계에 의존하면서 심판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인간이 기계에 자리를 내주는 일은 산업계에서는 상시로 일어나고 있다. 산업 발전사가 곧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해온 역사였으며, 인간이 자신이 보유한 기술에 대해 긍지를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자본주의가 아직 뿌리를 내리지 않았던 19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직장에서 쫓겨난 블루칼라들이 방직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기계파괴) 운동을 벌인 적도 있으나 기계는 이내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기술 발전은 항상 진행형이다. 구글은 최근 무인 자동차 시험 운전에 성공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택시기사·버스기사라는 직업도 조만간 기계에 자리를 내줄지 모른다. 거스름돈을 정확히 내주는 기계가 만들어지면서 사라진 버스 안내양, 자동번역기에 자리를 내준 번역가 신세처럼 말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최근 미국 내 700여 종의 직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중 절반이 디지털 기술 발전의 영향으로 10~20년 내에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문제는 기술·기계가 인간을 대체할수록 인간 삶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실상은 정반대라는 점이다. 기술·기계가 가져온 ‘생산성 향상’이라는 결과물이 자본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계의 보조 수단에 머물면서 노동의 가치는 떨어지고, 숙련도는 중요해지지 않게 됐으며, 언제든 대체 가능해졌다. 기계화의 한켠에서 인간은 한층 강도 높은 성실성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최경환 경제팀이 지난달 내놓은 경기 부양 정책 가운데 기업의 이익을 근로자에게 돌린다는 정책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자본이 연구·개발(R&D)을 주도하고, R&D의 결과물을 자본이 소유함으로써 근로계층이 소외돼가는 자본주의 속성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다.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차원에서 말이다.

마침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 경제모델을 거부하기를 빈다”고 했다. 끊임없는 탐욕, 그리고 그 탐욕이 낳는 빈부격차 확대라는 자본주의 문제를 교황은 ‘죽음의 문화’라고 자주 비판해 왔지 않은가.

그나저나 이 글을 쓰려고 자료를 찾다 보니 맙소사, 미국에서는 뉴스 기사를 써주는 프로그램이 생겨났단다. 정교하게 설계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지난해 300만 개의 기사를 작성했고 올해 10억 개의 기사를 생산할 예정이란다. 무인 기사(技士) 시대뿐 아니라 무인 기사(記事) 시대도 오고 있었던 것이다. 헉, 정신 바짝 차릴 일이다.

박태희 경제부문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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