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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편한 곳으로" … 대입 전쟁 끝나자 입대 전쟁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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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경찰 지원자들이 체력검사를 받는 모습(왼쪽). 의무경찰 시험에 합격하려면 팔굽혀펴기를 20회 이상 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경찰청]

의무소방원들의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다. 15일 현재 복무 중이거나 복무가 끝난 1048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그중 369명이 재학 또는 졸업 대학을 공개해놓았다. 이를 분류해 보니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이 234명으로 63.4%를 차지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재학·졸업생은 106명으로 28.7%다. 여기에 성균관대·서강대·한양대·한국외국어대를 합하면 47.6%로 절반 가까이에 이른다. 단일 대학으로는 서울대 출신(47명)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고려대(31명), 연세대(28명) 순이다. 코넬·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외국 대학 졸업·재학생도 11명이다.

 ‘훈련소에서 의무소방원 14명이 한 분대를 이뤘는데, 그중 10명이 SKY(서울대·고대·연대)였다. 다른 애들이 학교를 물어 ○○대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그 싸늘함이란….’ 인터넷에는 이런 유의 의무소방원 학력과 관련한 글이 많다. 경기도의 한 소방서를 확인해보니 현재 복무 중인 12명의 의무소방원 중 5명이 이른바 ‘SKY’ 출신이다.

 병무청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국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2009∼2013년 5년간의 카투사(KATUSA·미8군 한국군 지원단) 합격자 9006명 중 SKY 출신은 2078명으로 23%였다. 고려대(760명)·연세대(671명)·서울대(647명) 순으로 많았다. 외국 대학 출신은 1423명으로 15.8%였다. 전체 9006명 중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가 주소지인 이는 1401명으로 15.5%에 해당됐다.

 의무경찰의 출신 대학별 분포는 공개된 적이 없어 확인이 어렵다. 단편적 정보만 있을 뿐이다. 대구경찰청은 최근 ‘대구에서 복무 중인 의경 919명 중 4년제 대학 졸업·재학생이 785명(85.4%)’이라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정확히 집계는 안 해봤는데 10개 안팎의 인기 대학 출신이 전체 서울 의경의 3분의 2 이상을 구성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의무소방원 지원자가 제자리멀리뛰기를 하는 장면. 2m5cm 이상 뛰어야 합격이다. [중앙소방학교]

의경 경쟁률 3년 새 7배로

의무소방(의방)·의무경찰(의경) 등의 대체복무나 카투사에 학력 우수자들이 몰린다. 선발 경쟁률도 고공행진이다. 지난 5월 의방 22차 선발에서는 300명 모집에 1648명이 지원해 5.4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90명만 뽑은 2011년 초 의방 선발 때는 경쟁률이 14대1까지 기록했다. 의경의 전국 평균 경쟁률은 2011년 1.7대1에 불과했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11.9대1로 치솟았다. 지난달 대전경찰청에서는 19명 모집에 673명(경쟁률 35.4대1)이 몰렸다.

 카투사도 비슷하다. 2009년 5.4대1에서 지난해 6.7대1로 경쟁이 세졌다. 희망 입대 월에 따라 경쟁률 차이가 나는데, 올해 3월의 경우는 8.5대1이었다.

 입영 대상자들이 의방·의경·카투사에 몰리는 기본적인 이유는 일반 군대에 비해 ‘안전하고 편하다’는 데 있다. 의경은 최근 수 년 새 획기적으로 구타나 괴롭힘이 줄었다. 올해는 지금까지 보고되거나 확인된 구타 사건이 단 한 건도 없다. 시위 현장에 나가는 기동대에 배치된다 해도 다칠 위험은 크게 줄었다. 폴리스라인의 맨 앞쪽에 직업 경찰관이 서는 방식으로 대응 시스템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28사단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으로 이들 ‘인기 복무처’를 향한 경쟁은 더 심해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 휴학생 정모(24)씨는 “지난달 의경 시험에서 떨어졌다. 카투사는 영어 점수(토익 780점 이상) 때문에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의경 지원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경 시험은 매달 한 차례 실시된다.

 의방·의경·카투사 쏠림 현상의 여파로 일반 군 복무자의 평균 학력 수준은 낮아지고 있다. 특히 육군이 그렇다. 공군·해군·해병대의 지원병제 시행도 육군에 영향을 준다. 강원도 육군 부대의 김모(30) 부사관은 “요즘은 좋은 대학 출신들이 일반 전투병으로 배치받는 일이 거의 없다. 소위 ‘명문대’ 출신이 크게 줄었고, 그들은 대개 행정병 등으로 빠진다”고 말했다.

 학력 불균형만 문제는 아니다. 신체·체력 조건이 좋은 장정들이 의방·의경에 집중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의방 시험에는 제자리 멀리뛰기가 포함돼 있다. 2m5㎝ 이상이 합격이다. 18~30세의 남성 중 절반 정도는 넘기 어려운 기준이다. 의경은 키 1m65㎝ 이상만 지원이 가능하다. 일반 현역병 신체검사 통과 기준보다 6㎝가 크다. 신체 조건까지 좋은 장정들이 군 대체복무를 하는 게 현실이다.

“카투사·의방은 특목고, 육군은 일반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카투사·의방·의경은 특목고, 공군·해군은 자사고, 육군은 일반고”라는 농담이 돌고 있다. “입시 전쟁 끝나면 입대 전쟁”이라는 말도 있다. 대형 서점에는 고시 서적 전문 출판사들이 내놓은 의방 필기시험 준비용 문제집들이 깔려 있다.

 의방·의경 선발 방식에 대한 입영대상자들의 불만도 크다. 의경 시험에서 탈락한 장모(20)씨는 “면접 때 심사위원이 ‘방금 말한 것을 영어로 표현해보라’고 했다. 의경 근무에 유창한 영어가 왜 필요한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대학 소방학과의 한 재학생은 인터넷 사이트에 ‘소방 전문 지식이 있고, 소방 경험을 쌓고 싶은 우리 과 학생들은 정작 의방 시험에서 명문대 학생들에게 밀려 거의 다 탈락한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의방 선발에서 당락은 필기시험(국어·국사·상식)이 좌우한다.

‘군 입대 계급화’ 방지책 세워야

군 전문가들은 의방·의경 대체복무와 카투사의 인기와 이에 따른 일반 군대 기피 현상을 걱정한다. 김대영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일반 현역병들이 공부 잘하고 집안 좋은 아이들은 편한 곳에 가고, 자신들만 험한 곳에 끌려 왔다고 생각하면 ‘국가에 대한 헌신’의 자세가 흐트러진다. 병사들의 피해의식은 군대 폭력 문제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방과 의경은 소방대원과 경찰관이 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을 우선적으로 배치하는 게 합당하다”고 덧붙였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군대 가는 것도 ‘계급화’되는 현실은 크게 잘못됐다. 의방·의경도 카투사처럼 일정한 기준을 갖춘 지원자들 중에서 추첨해 선발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원한 국방부 관계자는 “명문대 출신을 뽑아 경찰서장 차 운전시키는 게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일인가. 의방·의경을 포함한 전체 병력 자원의 효율적 활용 방안을 다시 종합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 차길호·박종화 인턴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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