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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내전은 종파 대립 아닌 테러와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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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내전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넓히고 있는 가운데 이를 군사적으로 제압할 마땅한 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이슬람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의 분파인 IS가 오히려 원조 알카에다보다 더 위협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IS는 이미 이라크와 시리아 영토의 3분의 1 정도를 장악했다. 특히 시리아 내전을 통해 실전 경험을 얻은 IS는 지하드(이슬람 성전)를 명분으로 순교를 불사하고 있다. 또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유전을 다수 장악해 자금 사정도 여유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 상황과 전망을 할릴 알 모사위 주한 이라크 대사에게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서울 동빙고동의 대사관에서 이뤄졌다.

- 이번 내전의 배경은.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라크가 겪은 격동의 지난 30여 년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라크의 불행은 1970년대 후반 사담 후세인의 집권부터 시작된다. 독재자의 등장으로 이라크의 정치ㆍ사회ㆍ문화ㆍ교육 등 모든 분야가 퇴보했다.

또 후세인 집권 이후 이라크-이란전, 걸프전, 미군의 이라크 점령 등 세 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이라크의 국가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됐다. 경제적 피해 외에도 그동안 200만 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됐다. 이런 과정에서 이라크는 혼란에 빠졌고, 현재는 새로운 민주국가 건설을 위해 차근차근 전진하고 있는 중이다.

IS로 인한 내전도 이런 상황 속에서 발생했다. 국가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적인 테러 집단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 반군 세력 IS가 대외적으로 국가를 선포하는 등 세력을 넓히고 있다. 현 상황은.

“IS는 현재 이라크 영토의 약 30%를 장악하고 있다. IS가 세력을 넓힐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라크군보다 더 우수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6월 IS가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북부 모슬을 점령한 이후 미국 등에 무기와 군 장비 지원을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최근 미군이 IS 점령지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고, 다른 서방 국가들도 무기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우리에게 병력은 충분하다. 다만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무기를 부족할 뿐이다. 한국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라크 정부의 목소리를 신중히 검토해 주길 바란다.”

- 이번 내전을 수니파인 IS와 시아파 간 종파 대립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인정했듯이 IS는 국제적인 테러집단이다. 그들은 세계 70여 개국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자금 지원은 물론 전투를 위한 병력 또한 전세계에서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수단 등에서 입지를 잃은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이다. 이 때문에 이번 싸움은 ‘테러와 전쟁’이다.

현재 IS와 전투를 벌이는 이라크군에는 수니파들도 적지 않다. 이라크에서는 지난 1500년 이상 수니와 시아, 그리고 다른 소수 종파들이 평화롭게 공존해 왔다. 외부 세계는 이런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종파 전쟁으로 단순화시키고 있다.”

- 하지만 IS의 대부분이 수니파 아닌가.

“사실이다. 그러나 종파 대립이란 구도는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강조하는 해석일 뿐이다. 현재 이라크 의회 구성을 보면 전체 의원 328명 중 시아파는 183명이다. 나머지는 수니파 또는 다른 종파 소속이다. 우리 의회가 이렇게 구성된 것은 종파적 배타성보다 평등과 균형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 최근 푸아드 마숨 대통령이 하이더 알 아바디 국회부의장을 새 총리로 지명했다. 국제사회는 새 총리가 이라크내 종파와 인종을 아우르는 연립정부를 성공적으로 구성하기를 원하는데.

“새 정부는 새 국가 건설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국민 통합은 국가 시스템 구축과 민주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모든 종파를 초월해 이라크 국민 모두가 평등하다는 인식을 심어 줘야 한다. 차별을 통해 정치적 이익을 취했던 구태가 반복돼서는 안된다. 2003년 이후 고난의 세월을 보낸 만큼 모두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새 정부 내에서는 이전과 달리 협상과 타협이 상대적으로 쉽게 도출될 것이라 기대한다.”

- 하지만 새 총리 지명 전 바그다드 중앙정부 내에서는 불협화음이 적지 않았다.

“새 총리가 지명되자 누리 알 말리키 총리의 반발이 있긴 했다. 하지만 새 총리 지명 하루 뒤 말리키 총리는 자신을 지지하는 군부를 향해 ‘군은 국방에만 전념하고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라크의 미래를 위해 정치적 이익을 포기한 것이다(말리키 총리는 15일 결국 자진 사퇴했다). 이를 볼 때 이라크의 새 국가 건설은 아주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 IS의 세력 확대를 막기 위해 쿠르드자치정부(KRG)에 미국 정부가 직접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쿠르드정부의 군사력이 강력해질 경우 부작용은 없을까.

“우선 KRG가 자치권을 갖고 통치하는 지역이 이라크 영토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분리독립은 국제법상 불가능하다. 바그다드 중앙정부는 미국이 KRG에 제공하는 무기에 대해 면밀히 검사한다. 가공한 위력을 갖고 있는 무기는 아니다. 나중에 독립을 추진하는 데 사용될 만큼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쿠르드족은 이라크 외에도 이란ㆍ터키ㆍ시리아 등에 산재해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 내 KRG가 분리독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북부 소수 민족인 야지디족이 IS에 의해 고립돼 대량학살 위기에 처했는데.

“가장 시급한 것은 이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라크 중앙정부는 미국ㆍ프랑스ㆍ독일 등과 함께 이들의 안전 확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군이 IS에 공습을 한 것도 야지디족에 대한 접근을 막고 이들이 탈출할 수 있는 안전한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다.”

- 이번 사태로 미국과 이란 관계가 미묘하게 변했다. 이란 핵문제로 대립했던 양국이 IS 문제로 공조하고 있는 형국인데.

“이란이 미국과 협력한 적은 전에도 있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이란은 미국을 도왔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좋아진다면 중동이 한층 평화로워질 것이다. 지난해 8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과 이란 관계는 과거보다 한층 유연해졌다. 이란 핵 문제도 결국 대화를 통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 한국과 이라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향후 협력 강화를 위한 방안은.

“자이툰 부대 등 한국군의 인도주의적 활동은 이라크인들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이라크에서 한국은 좋은 친구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향후 양국 협력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이라크는 국가재건을 위해 1조 달러 상당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20~25% 정도를 수주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경제 외에도 문화와 교육 분야의 교류가 확대되길 원한다. 양국 간 학생 교류 프로그램 신설 등이 그 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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