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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회관에도 '명당' … 방 배정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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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국회 의원회관에도 ‘명당’이 따로 있다. 바로 접근성과 조망권을 모두 갖춘 방이다. 의원회관은 ㅂ자 형태의 지하 5층, 지상 10층 건물이어서 바깥 전망이 좋은 7~8층이 ‘로열층’이다. 그중에서도 국회의사당 앞 푸른 잔디와 분수대가 보이는 방과 한강·양화대교가 내려다보이는 북서쪽에 위치한 방들이 인기가 많다.

 이런 로열층은 대체로 다선(多選) 의원들의 몫이다. 각 당 원내 행정국이 의원들로부터 희망하는 방을 접수하는데 관례적으로 선수(選數)와 연령 순으로 배정하기 때문이다. 고참 우대론이다. 3선 이상 의원들의 방 분포도를 보면 새누리당 35명 중 16명(46%)이, 새정치민주연합 42명 중 19명(45%)이 7~8층에 둥지를 틀었다. 반면 전망이 별로 안 좋은 3~4층엔 초·재선 의원들이 포진해 있다. 3층 의원실 25개, 4층 의원실 37개 중 3선 이상은 5명뿐이다.

 의원회관을 리모델링한 뒤에는 9층도 새로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다. 엘리베이터를 홀수층과 짝수층으로 나눠 운행하는데 9층 버튼은 짝수층 엘리베이터에도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

국회 의원회관에는 3층부터 10층까지 의원 사무실이 배치돼 있다. 조망권 이 좋은 회관 정면과 한강이 잘 보이는 후생관 쪽 측면이 명당이다. KBS 신관 방향, 내부로 창이 나 있는 방의 순서로 선호도가 낮아진다. [중앙포토]

 ◆방 번호에 숨은 뜻=방 번호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5·18 광주민주항쟁을 상징하는 518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초선 때부터 6선 때까지 4·19 혁명에서 따온 419호를 썼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던 문재인 의원의 325호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일(5월 23일)을 뒤집은 번호다.

 박지원 의원은 615호를 고수한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의미하는 숫자로 박 의원이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남북 첫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기 때문이다.

 반면 재선 의원인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의미 있는 숫자도 아니고 전망이 좋지도 않은 338호를 18대 국회에 이어 또 쓰고 있다. 방 번호가 바뀌면 지역구인 서울 양천을 주민들이 의원실을 찾아오기 불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의원실 측은 “이 방이 원래 비교섭단체 몫으로 배정된 데다 전화번호도 바뀔 뻔했는데 국회 사무처랑 2주 넘게 싸워 초선 때 쓰던 방을 그대로 지켜냈다”며 “좀 더 좋은 방이 아니라 오히려 기피하는 방을 달라고 조른 건 우리가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444호는 불운·괴담의 진원지=의원들이 기피하는 방 번호도 있다. 대표적인 게 444호다. 15대 때 이 방을 썼던 민주당 국창근 전 의원이 공천 결과에 반발해 불출마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 뒤에 이 방을 차지한 16대 김낙기 의원, 17대 정종복 의원은 모두 다음 총선에서 낙선했다. 18대 때는 전북 정읍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유성엽 의원이 이 방을 썼다. 유 의원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444호도 징크스를 깨는 듯했다. 하지만 19대 국회 들어 의원회관을 리모델링하면서 아예 ‘444’란 방 번호를 없앴다.

 428호와 643호도 의원들의 정치생명을 단축시킨다는 괴담이 따라다닌다. 17대 국회 때 428호를 썼던 한화갑 당시 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김홍업 전 의원이 이 방을 물려받았는데 김 전 의원도 18대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하자 불운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풍문이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은 새정치연합 안규백 의원이 탈없이 잘 쓰고 있다.

 643호는 16대 때 박주선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17대 때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 18대 때 친박연대 홍장표 의원 모두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다만 박 의원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18, 19대에서 배지를 달았다. 지금은 새정치연합 전정희 의원이 쓰고 있는데 전 의원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가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통령을 배출한 방=역대 대통령을 배출한 방들은 누가 주인일까. 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한 620호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이운룡 의원이 쓰고 있다. 당시 비례대표이던 박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 의원이 의원직을 승계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17, 18대 때 썼던 545호는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입주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312호는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쓰던 638호는 새정치연합 임수경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328호는 새누리당 강석호 의원이 각각 차지하고 있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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