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사랑|김창석<근촌동성당 사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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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파리」에 있믈 때 읽은「콩트」가 생각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눈발이 날리고 날씨가 무척 추운 어느날 밤, 「파리」시내 어느 집 지붕밑 초라한 다락방에서 한 예술가가 조각을하고 있었다.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그예술가는 밤새도록 진흙 덩어리를 앞에놓고 자기 머리 속의 영상을 거기에 새기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었다. 여러달동안 노력한 끝에 그가 머리속에 그리던 작품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천장으로 난 창문의 깨어진 유리 사이로 눈송이가 날아 들어와 그 예술가의 뺨을 스쳤다. 그제서야그는 날씨가 매우 춥다는것을 느꼈다. 그리고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자기의 진흙 작품이 얼어 터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자기가 입고 있던 남루한 겉옷을 벗어 자기가 조각한 작품을 둘러쌌다.
얼마후 날이 밝았을때 그 조각가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대개 이런 내용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생존경쟁이 심하고 살벌한 이세상에 사는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암시해주는 것 같다.
그 예술가의 자기 작품에대한 사랑은 분명히 「어리석은 사랑」이라고 볼수있다.
몇해전 성탄날의 일이 또 생각난다. 어느 여구우의 안내로 늙으신 목사님 한분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여구우가 위배상에 다닐 때 잘 알던 목사님인데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다.
그 목사님의 집은 폐암동에 있었다. 매우 초라한 집이었다. 우리 일행이 그의 방에 들어섰을 때 그는 병석에서 일어나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부인은 불평이 대단했다. 우리가 찾아가기 전날 어느 미국목사님이 문병하러 왔다가 금일봉을 주고 갔는데, 자기도 옹색하면서 그 목사님이 그돈을 모두 옆집 환자에게 주어버렸다는 사연이었다.
그 불평을 듣고 오히려 나는 그 늙으신 목사님의 사랑에 머리가 숙여졌다. 그 목사님의 사랑도 역시 「어리석은 사랑」이라고 볼수 있다.
「파리」의 조각가와 그 목사님의「어리석은 사랑」이 바로 이 나라, 이 사회에 지금 필요한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약아빠진것 같다. 협력과 금력이 판치는 세상같다.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사람취급도 못받는 세상같다. 어떤 때에는 그러지 말아야 할 교회안에서도 그런수가 있다.
이러한 세상에「어리석은 사랑」을 가진사람들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룩 이 사회는 보다 더 밝고 명랑하고 살기좋은 사회가 되리라 생각된다.
어쩌면 이런「어리석은 사랑」이「그리스도」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만왕의 왕이라고 예언된「그리스도」의 탄생의 모습은 뜻밖에 너무나 초라한 것이었다.
마구간의 말구유, 그리고 헌 포대기-이런 것들이「그리스도」의 탄생현장의 모습이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순전히 인간적으로 보아서는 실패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도 어리석은 종말이었다. 큰 소리 치다가 꼼짝도못하고 십자가위의 사형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초라함」이, 이「어리석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의표가 아닌가 느껴진다.이 세상에 너무 성공적으로 보이는 교회는 매력이 없는것 같다.
너무 크고 웅장한 교회도 매력이 없고, 오히려 위압감을 준다. 며칠전에 명동성당에 처음 가본 어떤 사람이 너무크고 웅장해서 오히려 불안한 위압감을 느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있다.
이런 교회의 모습은「그리스도」의「어리석은 사랑」의 모습에 어굿난다.
이 「어리석은 사랑」 때문에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신나게 기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반드시 종교적이 아닐지라도 그저 어리석도록 남의생각을 해주고 서로 양보할줄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많아진다면 그만큼 새해에는 잘사는 사람들과 못사는 사람들의 투쟁과 경제불안에서 오는 고통이 줄어들리라 생각해 본다.

<약력>
▲1926년 인천태생
▲50년성균대졸
▲50∼57년·해군종군사제
▲57∼61년 미 「피츠버그」「듀케인」대서 「교육심리학」 전공
▲61∼ 63년 「로마」「우리바노」대졸
▲63년 부주교 서울교구 부주교
▲현재 서울 역촌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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