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양 흐름에 박자 맞춰준 이주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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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한 이주열 한은 총재가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2.25%로 0.25%포인트 내렸다. [김성룡 기자]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가 시작되기 직전인 14일 오전 8시58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밝은 녹색 넥타이를 매고 회의장에 들어섰다. 이 총재의 얼굴은 넥타이 색만큼이나 밝았다. “교황이 오신다는데 왜 거기 안 가고 여기 다들 계시냐.” 취재진을 향해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무거운 표정을 하고 말 없이 의사봉을 두드렸던 한 달 전 금통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날 금통위는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2.25%로 0.25%포인트 내렸다. 금통위원 6명이 찬성했고 1명이 반대했다. 이 총재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하는 경기 부양책에 힘을 보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을 때 연간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효과가 0.05~0.1%포인트란 과거 분석이 있다. 여기에 정부의 재정정책까지 합하면 위축된 심리를 개선시키고 경제회복의 모멘텀(추세)을 유지하는데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로써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밀어붙이고 있는 경기 부양책의 골격은 자리가 잡혔다. 정부는 41조원의 재정을 풀기로 했고 한은은 금리 인하로 화답했다. 오는 19일엔 노사정위원회가 재가동된다. 대기업에 쌓인 현금을 가계로 환류시키기 위한 세법 개정안도 마련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세 개의 화살(재정 확대, 양적완화, 구조개혁)’을 차례로 쐈다면 최 부총리는 동원 가능한 카드를 한꺼번에 꺼내 들며 총력전을 펼치고 나선 형국이다. 그러나 이날 시장의 반응은 담담했다. 코스피는 0.04%, 코스닥은 1.17% 오르는데 그쳤다. 금리가 내려가면 통화가치도 덩달아 떨어지는 게 보통인데 이날 달러당 원화 값은 오히려 0.75% 올랐다. 금리 인하 기대가 이미 주가나 환율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시장의 관심은 이미 다음달 금통위로 옮아갔다. ‘한 번 더’를 외치는 시장의 기대에 이 총재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이런 정책 효과를 지켜보고 우려하고 있는 심리가 어떻게 바뀔지, 또 그것이 가계부채에 어떤 영향을 줄지 등 모든 지표를 감안해서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은행권도 대출·예금금리 인하에 나설 전망이다. 이날 금융감독원은 시중은행과 특수은행, 지방은행 11곳의 여신담당자들을 불러 기준금리 인하를 신속하게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국고채와 금융채 등 시장금리에 연동되는 대출상품을 이용한 소비자들은 이르면 다음주부터 이자 부담이 다소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미리 반영해 금리를 낮춰왔기 때문에 추가 인하 폭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중은행들은 최근 0.1~0.3%포인트 예금 금리를 낮췄다. 국민은행은 지난 6일 예·적금 금리를 0.1~0.3%포인트 인하했고, 하나은행은 지난달과 이달 정기예금 금리를 0.2%포인트 낮췄다. 신한은행도 지난달 1년제 정기예금 금리를 0.15%포인트 인하했다. 우리은행 등의 일부 상품들은 1%대까지 내려왔다.

 다만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과 효과에 대한 전문가 반응은 엇갈렸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리 조정은 대부분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효과가 날 때까지 지속하는 게 보통이다. 금통위에서 한 번 정도는 더 금리를 낮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기준금리 추가 인하의 효과는 낮게 봤다. “오래전부터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시장금리에도, 주가에도 미리 반영이 됐다. 또 기준금리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려면 3~4% 같이 일정 폭 위에 있다가 내려와야 하는데 현 2%대 금리는 그런 효과를 내기에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김명실 KB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반대로 금리 추가 인하에 대해 부정적으로 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 10월 양적완화 종료를 예고하고 있는 만큼 추가로 금리를 내릴 여유가 없다.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우려도 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한은의 화답으로 최 부총리의 경기부양책은 더 탄력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이날 시장 반응에서 보듯 경기를 본격적인 회복세로 돌려놓자면 손에 잡히는 성과가 필요하다. 국회에 발목이 잡혀, 환경단체나 노조의 반대에 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반짝 살아난 시장의 기대는 더 큰 절망의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

글=조현숙·박유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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