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장관의 방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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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럴드·브라운」미 국방장관의 방한계획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임기가 한달 남짓 밖에 남지 않은 이른바 「레임·더크」가 와서 막중한 한국안보나 한미간의 제 문제를 논의한들 무슨 지속적인 소용이 있겠는가고 시들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군사전략 같은 것을 민주당의 것, 공 화상의 것 하는 식으로 두 부모 자르듯이 할 수는 없는 일임을 생각하면 「브라운」장관의 이번 방한은 임박한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의구를 갖는 것이라고 하겠다.
한국의 안전이 진공상태에서 보장되는 건 아니다. 한국은 세계 속의 한국이요, 미국의 대한군사지원은 세계적인 군사전략의 중요한 한 자락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소련의「아프가니스탄」침공, 「이란」혁명, 「이란」·「이라크」전쟁, 「폴란드」자유노조운동, 소련의「아시아」태평양 지역해군력강화 같은 일련의 불안요소가 한국에까지 불안의 파장을 밀고 오는 시기에 미국 국방정책입안의 최고 책임자의 한사람이 이 지역을 지나던 발길을 잠시나마 서울에 돌렸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특히 한국이 작년의 10·26이후 지난 8월까지의 격동 속의 과도기를 거쳐 새 정부가 발족한 아래 「브라운」이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미국고위관리라는 점도 음미할 만 하다.
전두환 대통령과「브라운」장관은 13일의 청와대회담에서 세계정세전반을 토의하고, 그런 배경아래 한국안보의 현황, 미국의 지원방안, 동북아의 안전에 대한 한국의 역할 등을 의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봄의 광주사태 이후 북괴는 한국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미국·일본 같은 우방들과의 관계를 이간시키려고 꾸준히 노력해 봤다. 미국의 하원의원과 전직고위관리가 지난여름 평양을 방문한 속사정도 그런 것이었다.
청와대 회담에서「브라운」장관은 북괴의 남침위협, 무장간첩남파에 대해 인식을 새로이 하고 한미간에 대책을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대통령과「브라운」장관은 한국의 안보가 동부「아시아」및 미국의 안보이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이미 잘 알려진 입장을 다시금 확인했다.
한국의 국내사정으로 금년에는 연례 한미국방장관회의가 끝내 일리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 「브라운」장관을 맞아서 열린 회담이 유산된 안보협의회의를 충분히 대신한 것이라고 하겠다.
한미고위관리들이 만나면 미국 측은 한국안보의 특수사정을 귀가 따갑도록 듣기 마련이다.
내년 1월20일이면 공화당의 「레이건」행정부가 들어서고「브라운」장관은 야인으로 돌아간다. 「레이건」행정부의 대한정책이「카터」행정부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여지는 거의 없다.
「브라운」장관은「레임·더크」라는 심리적으로 불리한 여건 속에서 한국을 방문하여 한반도의 군사·정치정세에 관해서 한국의 지도자와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한국의 군사정세, 소위 한국의 특수성에 대한「브라운」장관의 이해와 인식이「레이건」행정부에 남김없이 승계 되는 것이다.
장관은 떠나도 실무관료들은 남는다. 사람은 바뀌어도 정책의 일관성은 그렇게 해서 유지되는 것이다.
한미 두 나라의 전통적인 유대는 사실정권의 차원을 넘어 두 나라의 국가적인 공동이익을 위해 항시 긴요하다. 따라서 크고 작은 기복들은 그런 테두리와 명제를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은 어느 일방의 노력보다는 쌍방의 성실한 노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레이건」의 새 정부가 독자적인 한국 관을 갖기 위해서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브라운」장관은 바로 그 점에서 양국의 지속적인 관계를 더욱 존중하고 발전시키는 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이 기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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