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색 시비|김치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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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0년대는 흑백「텔FP전」의 시대가 열렸고 80년대에는「컬러·텔레비전」의 시대가 열렸다. 「컬러」수상기의 시판이 개시된 이후에도 판매가 시원치 않다고 하던 것이 엊그제의 일인데 12월 들어「컬러·텔레비전」의 전파가 발사되자 금방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집집마다 어린아이들의 성화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한 부모들 사이에는 웃지 못할「에피소드」가 꽃피고 있다.
아직도 집안에 흑백수상기를 사 놓지 않은 A는 지금도 아이들의 교육에「텔레비전」의 유해 론을 들고 나온다. 「텔레비전」의 오락적인 기능이 어린이들에게 오락 중시의 관념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소비재중심의「텔레비전」광고가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소비풍조를 개발 당하게 하며 또 광고문의 과장된 언어가 우리들의 일상적인 언어의 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A의 지론이다.
그래서 A의 아이들은 어린이「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시간에는 이웃에 있는 친척집에 가서 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A의 아이들이 하루는 친구 집에 들러「컬러·텔레비전」을 보느라 늦게 야 집으로 돌아왔다. 걱정하던 A가 늦은 이유를 물었다. 아이들은「텔레비전」의 화면이 천연색으로 나타난다며 매우 부럽고 신기한 표정을 짓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A는 세상이 모두 천연색이고 너희들의 눈에 띄는 것이 모두 천연색인데 무엇이 그처럼 신기할 것이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차라리 신기하다면 천연색의 세상을 흑백으로 나타나게 하는「텔레비전」이 더 신기한 것이라고 결론처럼 못을 박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머뭇거리더니『아빠, 그럼 흑백「텔레비전」이라도 하나 사요』하더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A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목에 힘을 주면서 입을 꽉 다무는 일이다.
요즈음 흑백「텔레비전」에『이「프로」는「컬퍼」로 방영중입니다』라는 자막이 나오는 것을 보고「컬러·텔레비전」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의 형편을 생각하라고 하는 한 시청자의 독자투고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텔레비전」이 산업사회의 상징으로, 대중 매체용 꽃으로 등장했다는 것을 이러한 화제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대적인 전자 문명의 이 화려한 승리가 한편으로는 현장에 부재했던 시청자로 하여금 직접 눈으로 보게 하는 현장감을 갖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카메라」의 이면에 있는 것을 망각 속에 집어넣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텔레비전」을「바보상자」라고까지 부른다.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서 독서와 같은 다른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텔레비전」수상기의 보급률을 보면 그것이 오늘의 생활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텔레비전」이 최근의 경제·사회·풍속·언어에 가져온 변화는 어느 사회에서도 부인될 수 없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들이 해줄 것이다. 다만「텔레비전」수상기 때문에 있었던 A와 아이들 사이에서와 같은 입씨름이「텔레비전·프로」의 개선에 반영되면 이 문명의 이기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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