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한도와 IMF의 권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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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달에 방한했던 IMF(국제통화기금)협의단과「스탠드바이」차관협정을 갱신하면서 우리정부측은 국내여신한도의 확대를 가능토록 했다.
IMF가「스탠드바이」차관협정에 따른 의무조항으로 제시한 것은 내년 상반기까지 국내여신잔액을 20조원으로 함으로써 금년 말보다 3조6백억 원을 늘릴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금년 상반기 중에 국내여신이 월 평균 3천4백억 원씩 공급되었던 것을 5천억 원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내년 상반기 총통화증가율도 29·8%로 올해 연말목표인 25%를 상회할 전망이다.
IMF가 통화공급의 증액을 인정한 것은 경기침체현상이 예상외로 심각하여 경기 자극 책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겠다는 필요성을 인식한 끝에 나온 결론이다.
특히 IMF는 국내의 물가상승이 주로 해외요인(70%정도)에 의해 주도되는「코스트·푸시」가 주인이며 초과수요는 거의 없기 때문에 통화량의 증가가 큰 위협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내여신의 증액을 인정한 배경에는 그러한 분석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IMF의 물가상승「패턴」에 대한 견해가 어떻든 우리로서는 통화운용에 신중을 기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소망스럽다.
해외요인에 의한「인플레이션」의 영향이 국내물가를 교란시킨다고 해도 이를 흡수하여 충격을 약화시킬「쿠션」이 미약한 상태아래서는 유동성의 규제가 물가억제의 중요한 정책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화공급은 경기회복에 따른 실물경제의 증대에 조심스럽게 맞추어 조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2년간 고통을 참으면서 추진해 온 긴축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감량경제의 결과만을 남겨 놓고 물가는 물가대로 휘어잡지 못하게 된다.
금년만 해도 추곡수매자금·소비자금융 등으로 이미 돈이 풀려 나가고 있는 데다 내년에는 정치자금·주택자금 등 통화추가공급이 정책적으로도 불가피한 상태에 있으므로 통화운용이 자칫하면 방만해질 소지가 있다.
이러한 전후사정을 고려할 때 물가안정을 위한 안전판이 없는 가운데 통화의 확대공급을 계속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보다는 금리인하 조세삭감 등 재정·금융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여 기업의 자금 및 원가부담을 경감시켜 주고 가계의 지출을 보충해 주는 방안이 효율적이다.
만약 시중의 대금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여신을 늘린다 해도 통화증발을 통한 여신증가는 현 단계로서는 경기자극 보다는 물가상승을 가속화시킬 것이 명백하므로 조세·금리조정 수단을 가미하라는 것이다.
IMF의 권고에도 대 정부 여신을 억제하라든지 양곡기금의 적자발행을 더 이상 허용치 말라든지 임금인상은 생산성상승률 이내에서 하라는 등의 내용이 있는 것은 물가상승압력을 가능한 한 배제하라는 충고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물가를 누를 수 있다면 금리를 내려도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리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경기침체와「인플레이션」의 동시진행을 차단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중 어느 한 측면을 해결하는데 역점을 두면 다른 측면이 심각해지는 이중배반 성이 있는 것은 그 동안의 경제상황이 말해 주고 있다.
그런 뜻에서 여러 가지 정책을 조화하여 경기와 물가문제를 함께 수습하는 대안이 구현되어야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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