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영국의「웨스트민스터」사원부속학교를「찰즈」2세가 견학한 적이 있다.
왕을 안내하는 교장「바스비」박사가 모자를 그대로 쓴 채로 있자 시종이 이를 나무래려 하자 교장은 말하기를『폐하 앞에서 그냥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학생들에게 교장보다도 높은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왕보다 높은 존재가 교장이다. 또 그래야 교육이 된다. 비록 교장이 교주로부터 봉급을 받고는 있다 해도 피고용인이 아닌 교육자인 것이다.
「토머스·휴」의 소설<「톰·브라운」의 학창생활>의 무고는 사립명문교인「러그비」중학교다. 그리고 교장「아놀드」박사는 실재인물이었다.
이 소설 속에서「아놀드」교장은 이사회의 유 력 인사의 아들을 퇴학시킨다. 교장은 은근히 뒤끝이 좋지 않을까 염려하여 사직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유 력 인사도 오히려 교장에게 격려의 인사를 전해 왔다.
학교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있다. 그리고 교장에게는 교육에 관한 온 책임이 있다. 당연히 권한이며 권위도 높아야 한다.
그것은 교장 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와 교육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물론「아놀드」박사는 19세기 영국을 통해 가장 뛰어난 인격자요, 교육자로 손꼽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러그비」학교가 「아놀드」박사 혼자의 힘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이 아니다. 여러 해를 두고 교장의 권위를 높여 나간 이사회의 힘도 컸다.
최근에 어느 사립학교에서 교주의 아들이 학생과 교사들이 보는 앞에서 교장의 멱살을 잡고 폭언을 해 가며 행패를 부렸다.
그러자 이를 목격한 학생들이 교주의 아들에 대한 항의 끝에 유리창들을 깼다는 얘기다.
학교는 사기업과는 다르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신성한 교육의 터전이다.
따라서 학교는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학교를 내 것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번 불상사가 보여주고 있다.
교장의 권위가 실추된 곳에서 제대로 교육이 이뤄질 턱이 없다. 그런 줄 알면서도 교장에게 행패를 부렸다면 도시 왜 학교를 세웠는지가 의심스러워진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선 학생에게도 잘못은 있다. 그러나 교장을 위한 순 정에서였다고 보면 학생들의 울분 끝에 저지른 탈선에도 이해가 간다.
더욱이 영하의 추위에도 난로하나 없었다면 학교운영자로서 과연 얼마나 성의를 다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아직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생각하면 그저 한심스럽기만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