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함께 세상을 관찰 박양호씨의『살아있는...』|주인공의 갈등에 생명감 노순자씨의『갈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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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달의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케 되는 것은 사회를 보는 작가의 눈이다. 어떤 작가들은 마치 결판이라도 내려는 듯이 문제의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가 하면 어떤 작가들은 문제의「밖」에 서서 그것을 관찰, 제시하는데 그치고 있다. 여기서 특히 유의하고 싶은 것이 후자의 경우다. 문제의 「밖」에 서있다고 패서 방관하거나 포기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다만 독자와 함께 들여다보는데 만족한다. 아마도 이것이 현대 작가가 취할 수 있는 미덕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박양호의 『살아있는 이등박문』(「문학 사상」 11월)은 우리 시대의 소설의 한 특징을 비교적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신분을 가진 「나」의 시각을 빌어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이 작품은 일종의 탐방기사에 비길 수 있다.
탐방기사의 작성은 「발자크」 이후 19세기 사실주의 소설에 성행했던 일반적인 수법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작가가 선택한 어느 특정 인물의 심리를 통해 외부의 사실을 내면화하고 있다. 이것이 19세기 소설과는 다른 기본적인 차이점이다. 즉 어느 한 인물을 선택하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독자와 만난다. 말하자면, 독자와 함께 세상을 보고있는 것이다.
우연히 알게된 어느 「콜·걸」의 생태를 관찰하는 「나」의 내부에 드리운 감정의 빗깔이나 음영이 그대로 독자의 의식 속에 옮겨지는 것은 이러한 소설의 구조에 힘입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순자의 『갈바람』(한국문학 11월)에 대해서도 동일한 지적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다같이 병든 사회의 일면을 신랄하게 비관하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지만 작가는 작품으로부터 얼굴을 숨기고 독자와 함께 인물의 의식 속으로 잠입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발언은 작중인물이 스스로 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하고 있다. 주인공의 감정을 거쳐서 묘사되기 때문에 사물은 정신화 되고 직접적인 생명감을 독자에게 부여하게 된다. 주인공 「묘순」의 내적 갈등은 그러므로 단순한 사회고발이나 비판의 목소리와는 달리 실재성을 획득하고있다.
그런데 이 작품 또한 『살아있는 이등박문』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부질없는 요설이 군데군데 끼어 있어서 독자의 시야를 가리거나 불투명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오류는 아마도 현실에 대한 작가의 비관의식이 작중인물의 의식 속에 완전히 용해되지 않고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 두 작품에 비하면 표문태의 『무능한 사람들」(「현대문학」 11월)에서는 작가가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무리하게 주인공에게 떠맡기고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중 인물이 스스로발언하고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작가가 허용해 줄 수 있었다면 이 작품은 좀더 자연스럽고 짜임새 있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홍석영의 『한 시인의 실절』(「현대문학」 11월)도 주제의 무게를 작품의 구조가 지탱하기 어려웠던 예의 하나로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어떤 형태로나마 문제의 핵심을 진지하게 파고 들어가려는 작가정신의 강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일단 주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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