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사 명퇴신청 1만3413명 작년 2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개혁이 추진되면 공무원연금은 삭감될 거라 하고, 그만둔다고 해도 (명예퇴직을) 받아주진 않고…. 교사로서 자괴감이 듭니다.”

 20여 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김모(49·서울 서초구)씨는 지난 3월 명예퇴직(이하 명퇴)을 신청했지만 심사에 밀려 퇴직 대상에서 빠졌다. 그는 “연금 혜택이 줄어들기 전에 그만두려 했다”며 “연금이 삭감되는 것도 걱정이지만 돈 문제로 교직을 떠나려 했던 게 학생들 보기에 부끄럽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제도가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개편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하반기(8월 말) 명퇴를 신청한 교원 수가 역대 최다인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교육부에 따르면 8월 말 명퇴를 신청한 교원은 모두 8249명이다. 매년 2, 8월 두 차례에 걸쳐 20년 이상 근속 교원을 대상으로 명퇴 신청을 받는다. 지난 2월 명퇴 신청자(5164명)까지 포함하면 올해만 1만3413명이 명퇴 신청서를 냈다. 지난해 신청자(5946명)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외환위기 직후 정년 단축(65→62세)으로 1만2543명이 명퇴했던 1999년 하반기~2000년 상반기 이후 최대 규모다.

 올 하반기 서울 지역의 명퇴 신청 교사는 2386명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383명)의 6배 수준이다. 오시형 서울시교육청 교원정책과장은 “신청을 모두 받아주려면 4000억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며 “예산이 부족해 181명(신청자의 7.6%)만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사들 사이에 “명퇴가 임용고사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보엽 교육부 교원정책과장은 “보통 명퇴 신청자의 80% 정도가 실제 퇴직을 하는데 올해는 신청자가 급증해 수용률이 매우 낮을 것 같다”며 “다음 주께 전체 시·도의 명퇴자 명단이 모두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명퇴 신청자가 급증한 이유는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하반기에 본격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개혁안이 확정되면 앞으로 연금보험료는 올라가고 연금 수령액은 줄어들 공산이 크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항간엔 내년부터 연금으로 받는 돈이 몇십 %씩 줄어들 것이란 말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청이 중앙정부가 준 돈(교부금)을 다른 데 쓴 것도 문제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명퇴 예산으로 교육청에 보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6466억원이다. 그러나 각 교육청이 편성한 명퇴 예산(2014년도 본예산안 기준)은 4022억원에 불과했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명퇴 항목으로 교부된 금액은 1696억원이지만 본예산엔 410억원만 편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명퇴 대란의 고육책으로 ‘유급 자유휴직제’를 추진 중이다. 희망에 따라 매달 80만원을 받으며 1년까지 쉴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돼야 가능하고 연금 혜택 때문에 명퇴를 신청했던 교사들이 이 제도에 얼마나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박세훈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유급 자유휴직제는) 장기적으로 교원 인력 수급을 감안하지 않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연금제 개편을 앞두고 명퇴 신청이 늘었다는 사실 자체가 개혁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교사들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측면에서라도 (연금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만·김기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