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2)제70화 야구에 살다(4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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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야구 60년 사상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제5회「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는 63년 9월21일부터 29일까지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졌다.
한국은 원래 제3회 대회를 서울로 유치하려다 운동장 사정 등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일본에 양보, 4년 뒤인 63년에야 드디어 숙원을 이뤘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5승1패로 패권을 차지했으며 일본과 자유중국은 3승1무2패로 동률을 기록했고 「필리핀」이 6패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한국은 「제끼스이」(적수)화학 「팀」이 주축이 된 일본을 5-2, 3-0으로 완파, 54년 1회 대회 이래 와신상담, 9년만에 일본 격파의 꿈을 실현했다. 한국은 자유중국을 1차「리그」에서 7-0으로「셧·아웃」시켰으나 2차「리그」에선 2-0으로 완패했으며 「필리핀」을 6-2, 14-2로 격파했다.
한국선수단은 단장 김수환,총무 허곤, 감독 박정도, 「코치」김영금, 심판 장석화, 주장겸 좌익수 박현직, 포수 서정리 김금현, 투수 신용균 백수웅 최관수 김청옥 김설권, 1루수 김응룡, 2루수 성기영, 3루수 김희련 오춘삼, 유격수 하일, 박정일 중견수 김삼용, 우익수 배수찬 박영길 등으로구성됐다.
일본격파의 숙원을 이룬 한국의 수훈선수는 신용균·서정리 재일동포「배티리」였다. 재일동포선수단으로 모국을 방문했던 신용균은 대한통운에, 서정리는 서울시청에 각각 「스카웃」되어 대표선수로 발탁됐다.「언더·드로」의 신용균은 내·외각을 찌르는 절묘한「슈트」로 일본타도에 결정적 수훈을 세웠다.
한국은 일본과 1차전에서 1회초 재일동포 유격수 박정일의「타임리·에러」로 1점을 헌상, 불안한「스타트」를 보였다. 그러나 1회말 2사후 3번 박현식이 통렬한 좌월「솔로·호머」를 터뜨려 1-1「타이」를 이룬 후 7회말 타봉이 작렬하면서, 대거 4점을 올려 대세를 결정지었다.
7회말 선두 8번 하일의 사구 후 9번 신용균의 「번트」가 실패했으나 신용균이 과감히 2루「스틸」에 성공하자 1번 성기영이 우전안타로 후속했고 2번 배수찬은 고의사구를 얻어, l사 만루의 황금「찬스」를 맞았다. 이어 3번 박현식이 끈질긴 승부 끝에 사구를 골라 밀어내기로 1점을 올려 2-1로 역전했다.
4번 김응룡이 내야 땅볼로 물러나 2사가 됐으나 5번 서정리가 일본 중견수「오자끼」 (미기) 의 머리 너머 「펜스」 앞에 떨어지는 장쾌한 2루타를 작렬시켜 주자를 일소, 5-1로 대세를 가름지었다. 한국은 9회초 끈질긴 일본의 추격을 1점으로 막아 5-2로 1차전을 승리했다.
한국은 최종일 일본과의 2차전에서 역시 신용균을 기용뱄고 4번 김응룡이 혼자 3타점을 올리는 수훈에 힘 입어 3-0으로「피날레」를 장식했다. 한국은 1회초 1사 2,3루에서 4번 김응룡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올렸다.
그러나 이후 7회까지 두「팀」은 투수전의 양상을 보이면서 한국은 1-0으로 불안한「리드」를 지켜 나갔다. 8회 초 3번 박현식이 사구로 출루한 뒤 4번 김응룡이 「볼·카운트」0-1에서 제2구째인 가운데 높은「볼」을 통타, 「백·스크린」을 넘기는 「투런·호머」를 작렬시켜 완승했다.
개인상 부문에서도 최우수상을 신용균, 타격상을 김응룡(23타수 9안타·3할9푼1리)등이 수상했다. 대회가 끝나고 당시 최고회의의장이던 박정희대통령은 선수단을 장충동 공관으로 초청, 다과회를 베풀어 주었다.
이 자리에서 박대통령의 『우승기념으로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는 물음에 허곤총무가 『야구장에 「나이터」시설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대답하자 이튿날 윤태일 서울시장에게 즉각 지시, 역사적인「나이터」시설이 서울운동장 에 등장하게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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