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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식 기자의 새 이야기 ⑥ 호반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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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르르르르르르, 또르르르르르르’

소나기를 뚫고 어디선가 가녀린 소리가 들려온다. 일직선으로 긋는 거친 빗소리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새 소리가 뒤섞인 묘한 하모니. 장마와 폭염에 축 처져있던 내 오감은 소리의 진원지를 찾느라 날을 세운다. 요란한 빗소리에도 잦아들기는커녕 끊임없이 제소리를 풀어내는 호반새의 노래에 숲은 흠뻑 젖어든다.

호반새는 남녘에서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흔치않은 여름철새다. 좋은 날 다 제쳐놓고 하필 궂은 장마 통에 새끼를 치느라 곤욕을 치르는지 안타깝지만, 그에게 비는 운명이다. 상극인 물과 불이 따지고 보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듯 호반새도 물·불과 관련한 별칭을 함께 갖고 있다. 호반새가 울면 비가 온다고 해서 ‘비오새’, 온통 붉은 색상을 띠고 있어 ‘불새’라고도 불린다. 같은 과에 청호반새와 뿔호반새가 있다. 키 큰 나무 구멍에 새끼를 치는 호반새와는 달리, 청호반새는 제 힘으로 흙벽을 뚫어 만든 토굴에서 새끼를 친다. 뿔호반새는 이웃 일본과 중국에서는 어렵지 않게 관찰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발견된 적이 없다.

호반새의 노래는 비를 닮았다. 곡조의 단순함이 그렇고 물기를 머금은 촉촉함이 그렇다. 호반새의 소리는 빗소리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노래가 된다. 그건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라, 가장 힘든 시련에 부딪혀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호반새의 번식기에는 늘 폭염과 장마, 심하면 몹쓸 태풍까지 따라붙기도 한다. 슬플 때 슬픈 노래가 위로가 되듯이, 호반새의 노래는 슬프되 결코 비탄에 빠지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노래다. ‘여름나기’에 지친 이들에게 호반새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빗방울을 뚫고 퍼지는 저 가녀린 떨림을.

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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