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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30여 마리 정성껏 돌보며 화폭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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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화가 오준택씨는 집에서 키우는 앵무새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며 교감한다고 말했다. [사진 = 채원상 기자]

“색감이 참 예쁘죠? ‘코뉴어’는 사회성도 무척 좋아요.” 화가 오준택(38)씨가 손등 위의 새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새는 그런 오씨의 손길을 즐기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 한번 만져볼 요량으로 손을 뻗었는데 기자의 손이 닿기 전에 새는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한참을 공중에서 퍼덕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오씨는 “어떤 동물이든 마찬가지지만 새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애완동물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애완동물과 교감하는 방법도 변하고 있다. 다람쥐··고슴도치·새·햄스터 같은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관상용 애완동물’을 길들여 사람의 손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핸들링(handling)’이라 칭하는 이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다.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6시간마다 이유식 줘

아산시 배방읍에서 미술학원을 운영 중인 오씨는 30여 마리의 앵무새를 키우고 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은 아기 새에게 이유식을 주는 것이다. 오전 6시에 첫 이유식을 먹이고, 밤 12시에 마지막 이유식을 준다니 오씨에게 새는 일상 그 자체다.

오씨가 새를 기르기 시작한 건 2007년. 개인전을 끝낸 오씨에게 지인이 어린 앵무새 한 마리를 선물하면서부터다. 평소 새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오씨는 자신에게 온 새를 길들여 보기로 마음먹었다.

새장 속에 가둬놓고 보기만 하는 ‘관상조’가 아니라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애완조’로 키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여섯 시간 간격으로 새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수시로 새를 만져주며 친밀감을 쌓아 갔다.

이 과정을 오씨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과 같다”고 표현했다. “깨끗하고 조용한 환경에서 좋은 걸 먹고, 잘 자고 그렇게 해야 애들도 잘 크잖아요. 새도 마찬가지예요.” 오씨는 새에게 정성을 쏟았고 새는 그런 마음을 헤아리는 듯 오씨의 손길을 즐기기 시작했다.

오준택씨가 그린 앵무새 그림.

지난 5월 새 그림 전시회 열어

오씨는 새의 매력에 푹 빠졌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마음을 당기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회성이 좋아 마치 강아지가 주인을 따르듯 하고,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모습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안녕’ ‘사랑해’ 같은 말을 가르치는 재미도 있었다. 거기다 예쁜 색감까지 갖추고 있어 그림 모델로 손색이 없었다. “새의 깃털은 빛에 따라 색감이 달라져요. 같은 새인데도 언제,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새를 볼 때마다 한순간도 놓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씨는 틈틈이 새를 모델 삼아 그림을 그렸다. “똑같은 새도 그릴 때마다 화폭에 옮겨지는 느낌들이 달라 그림을 그리는 재미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동안 그린 새 그림들을 모아 지난 5월에는 전시회를 열었다.

오씨는 미술학원에 오는 학생들에게도 새를 그리게 한다. 생명체를 그린다는 건 사물을 그리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반응이 어떠냐는 질문에 오씨는 “다른 대상을 그릴 때보다 새를 그릴 때 학생들의 집중도가 높다”며 “새의 표정이나 깃털의 색감을 표현하면서 그림 실력도 늘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새를 분양하기도 한다. 돌보기 어려울 만큼 새끼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새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새를 분양해 주지는 않는다. 두 달 동안 직접 이유식을 먹이며 키운 새끼들이 사랑받으며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새를 분양할 때 끝까지 책임져 달라는 부탁도 빠뜨리지 않는다. 호기심만으로 새를 분양받아 갔다가 돌려주는 사람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길들인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것

오씨는 “새를 분양받기 전에 현실적인 여건들을 꼭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앵무새는 수명이 길어요. 짧게는 25년에서, 길게는 35년까지 살죠. 새를 분양받을 때 그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해요.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애완조를 키울 자격이 없어요.”

오씨는 30여 마리의 앵무새를 자신의 ‘반려조’라 이야기한다. 단순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오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길들인 것에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다는 여우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윤현주 객원기자 200401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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