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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참혹한 사진도 전쟁 참상 표현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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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이들 놀이터도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주인 잃은 놀이기구만 폐허 속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지난달 27일 사진가 김상훈씨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하눈 마을을 방문해 찍은 사진. 이스라엘 국경과 맞닿은 이 마을은 가자지구에서 가장 많은 폭격을 받은 곳이다. [사진 김상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공습을 선호한다고 홍보한다. 첫째, 폭격할 건물을 정해놓고 전화를 걸어 미리 녹음된 내용의 메시지를 들려준다. 둘째, ‘똑똑 문을 두드린다’는 뜻의 ‘knock on the door’ 미사일을 쏜다. 폭발력이 약한 미사일을 특정 건물의 옥상을 겨냥해 쏘는 것이다. 곧 그 건물을 폭파할 테니 피하라는 신호다.

 “미리 알려줘도 3분 만에 터질 수도 있고, 안 터질 수도 있어요. 또 아무리 폭발력이 약한 깡통 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파편으로 죽는 사람이 생겨나요. 이게 실제로 맞아보면 대피를 하라는 신호인지 판단이 안 서기도 하고. 결국 남은 기간 동안 불안에 떨어야 하는 거예요.”

 지난달 18일부터 31일까지 가자지구에서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사진 취재를 한 김상훈(43·사진)씨의 체험담이다. 육군과 국방부에서 군 사진을 찍어오던 그는 2006년부터 분쟁 지역 취재도 다니고 있다. 텔아비브와 파리를 거쳐 3일 귀국한 그를 만났다. 그가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그곳에서 입은 방편조끼를 깨끗이 씻는 일이었다. 그는 그 조끼를 ‘bastard(이 녀석)’라고 불렀다.

 - 방탄이 아닌 방편조끼를 입었는데.

 “어차피 직격탄을 맞으면 다 죽는다. 그나마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날라오는 파편을 막아냈을 때다. 그래서 (파편을 막는) 방편조끼를 입고다녔다. 방편 안경과 플라스틱 헬멧도 썼다.”

 - 가자지구 상황은 어느 정도인가.

 “전쟁터에 자주 다녀봤지만 이렇게 폭격이 근처에 자주 떨어진 적은 처음이었다. 어디를 가나 이스라엘 미사일이 따라왔다. 외신 기자 20여 명과 함께 머무른 호텔 인근에도 폭격이 이뤄졌다. 호텔 근처에 유엔 건물과 국제기구 건물, 적십자 건물이 있었지만 이스라엘군은 이런 건물들과 우리 호텔 사이에 공습을 했다.”

 - 그곳에서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서 외신 속보를 확인하고 폭격 맞은 곳을 간다. 병원·장례식장도 다닌다. 폭격은 매일 이루어졌으므로 항상 이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 취재 원칙은.

 “사진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구급차를 막지 않는다. 유가족이 원치 않으면 안 찍는다.”

 - 어떤 사진을 찍었나.

 “아무리 참혹한 사진이어도 전쟁의 참혹함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본다. 현장에서 본 것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 전쟁의 피해가 이 정도 인 줄을 사람들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전쟁터 같지 않은 사진도 찍는다. 그곳에도 일상이 존재한다. 그런 사진이 오히려 직접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한번 더 전쟁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 팔레스타인 현지인의 반응은.

 “ 사람들 대부분은 하마스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이스라엘과 전쟁을 해서라도 이 봉쇄정책이 풀려야 한다고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스라엘도 다녀왔다.

 “2009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취재하면서 이스라엘을 다녀왔다. 당시 스데롯 쇼핑몰 내에 있었는데 공습 사이렌이 울렸다. 다들 대피소로 가더라. 내 눈에 호들갑 같아 보였는데 그들에게는 하루에도 10번씩 되풀이되는 일이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증오심이 자연스레 생길 수 있다.”

 - 누가 잘못했나.

 “가자지구는 너무 좁아서 폭탄을 피할 곳도 없는 곳이다.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건 한 명의 하마스 간부를 잡기 위해 열 명의 무고한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 수 있는지 알면서도 공격을 계속 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의 죽음은 적극적인 살인의 결과였다.”

 - 우리 군 관련 사진도 찍는다. 모순 아닌가.

 “현실적으로 평화가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 전쟁은 힘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더라. 군사력은 필요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기록 차원에서도 우리나라 대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군의 기록은 꼭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다.”

 김상훈 사진가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 다니면서 1993년부터 군 관련 매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2003년 미국 뉴욕에 있는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시파프레스를 비롯해 국내외 매체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 교수로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이집트가 제안한 휴전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휴전은 5일 오전 8시부터 72시간 동안 이뤄진다. 지난달 8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폭격을 시작한 이후 팔레스타인에서는 18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 측은 67명이 목숨을 잃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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