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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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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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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요한 지붕, 비둘기 노니는 곳

소나무 일렁이는 사이, 무덤들 사이

저기 불꽃으로 이뤄지는 그 정오

바다, 바다는 늘 다시 시작하고

오, 이 사유의 보답

신들의 정적 위에 오래 머무는 시선

(…)

바람이 인다, 살아야 한다.

- 폴 발레리(1871~1945) ‘해변의 묘지’ 중에서

이 시를 처음 읽은 대학 4학년 때 나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학교생활이 싫었고, 사회도 독재 체제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이 인다, 살아야 한다”는 구절을 김현(1942~90) 선생은 “살려고 애를 써야 한다”로 번역하셨다. 낭만과 서정의 끝에 서 있는 듯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나를 독려해서 활기를 얻고 학교를 마쳤다.

 2001년 건축가 정기용(1945~2011) 선생이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보러 가자 해 엄청난 감동을 기대하고 갔다. 정작 가보니 너무 실망스러웠다. 낭만적인 풍경일 줄 알았는데 여느 유럽의 무덤과 다를 바 없었다. 기존의 자신의 삶과 다른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 이 시의 본래의 의미였음을 나중에 알았을 때 굉장히 부끄러웠다.

 지난달에 다시 해변의 묘지를 찾아갔다. 13년 만이었는데, 정말 낭만적으로 보였다. 폴 발레리의 낭만과 내가 생각했던 낭만은 너무 달랐던 셈이다. 발레리는 지식인의 낭만을 말한 것이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투의 서정적 낭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발레리가 견지했던 지식인의 극한적 상태가 지금 우리 사회를 이루는 모든 지식인이 본받아야 하는 태도가 아닌가. 묘지 앞에서 깊은 상념에 잠겼다. 승효상 건축가·‘이로재’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