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한 거리 단조로운 시가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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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8월 10일부터 17일까지 「루마니아」의 수도「부쿠레슈티」에서는 제15차 세계역사학대회가 열려 한국에서도 고병익 박사 등 12명의 학자가 참석했다. 다음은 이 회의에 참석한 유원동 교(숙명여대)의 「루마니아」인상기 이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제15차 세계역사학대회는 우리 나라가 정식회원으로 가입하고는 세 번째 맞는 회의였다.
8월 10일 개회하여 17일까지 1주일 일정으로 진행된 대회에 우리 일행은 3일이나 뒤쳐지는 지각출석을 해야했다. 「루마니아」정부에서 발급하는 「비자」가 8월 13일에야 겨우 도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대하는 그곳 시민들의 태도도 대체로 친절하고 은근했다. 「부쿠레슈티」에 5일 동안 머물면서 길거리나 식당·상점 등에 나갈라치면 그들은 우리 가슴에 매달려있는 「대한민국」이란 패찰에 호기심과 온정이 가득한 미소를 보내오곤 했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자국어외에도 대부분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길거리를 지나 다가 아무나 붙들고 「프랑스」말로 얘기를 건네도 쉽게 의사가 통하는 것이었다.
「부쿠레슈티」시가는 대체로 한산한 편이었다. 아침저녁 출·퇴근시간에는 중심가에 인파가 몰려 북적거리지만 그 시간만 지나면 거리를 덮는 사람들은 대개가 외국인관광객들 뿐이었다.
식료 등 일상용품을 파는 가게를 제외하고는 모든 상점이 상오 10시나 돼야 문을 열었다. 우리가 머무르고 있던 「호텔」 바로 옆에도 소위 종합식품점이 하나 있었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조석으로 바구니와 보자기를 들고 그곳을 출입하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의복은 검소하다기보다는 초라해 보였고 얼굴에도 좀처럼 표정을 나타내는 일이 드물었다. 활기가 없이 모든 것이 밑으로 가라앉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시가지의 건물들은 옛 왕정시대에 지어진 해묵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외양이 번듯하고 쓸만 하다싶은 건물은 모두 공산당본부나 시당지부 같은 기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와 같은 단독주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시민들은 대부분 5∼6층 정도의 단조로운 「아파트」에서 매우 제한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듯 했다.
일반 시민들의 교통수단은 시내「버스」가 고작이었다. 이들 시내「버스」는 「레일」없이 고무 「타이어」로 전선에 매달려 운행되는 전동식 이었는데 난생 처음 보는 것 이어서 신기하기 이를데 없었다.
시민들의 문화생활은 수준이 아주 낮아 보였다. 「호텔」방에 놓인 「오디오」에서는 「뉴스」시간을 빼고는 하루종일 음악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 개의 「채널」중 하나만 작동이 되는 데다 잡음이 심해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텔레비전」에서는 자나깨나 작업독려를 의한 당가와 탄광·철공소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만이 방영되고 있었다.
우리가 발표장에 나간 것은 15일이었고 본격적으로 주제발표와 토론에 참석한 것은 16일이었다.
그날 상오 우리 나라의 고병익 박사는 「사회 속의 부녀문제」란 주제아래 한국여성에 관한 문제를 발표했는데 상오에는 6명의 논문발표자중 북한의 M·T·HONG이란 자가 「한국의 대본주의접촉의 발생」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고 하여 일부러 시간을 맞춰 출석해 보았으나 그자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대회본부 측에서 베푼 「리셉션」 석상에 나가 보니 마침 북한대표 5명이 참석하고 있었다.
내가 『아까 논문을 발표한다던 홍이 불참한 까닭은 뭐요?』하고 물었더니, 그들은 묻는 말에는 대답도 없이 상투적인 정치발언만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의 약점이 될만한 말만 골라가며 장광설을 늘어놓는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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