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새는 공룡의 후예가 아니라 대멸종을 이겨낸 공룡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6호 25면

‘너에게 날개를 주노라.’ 칼깃형 깃털은 처음엔 보온과 방수, 짝짓기를 위해 진화했다. 하늘을 날게 된 이후에야 깃털이 비행에 사용됐다.

진화론을 주창한 영국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1861년 이른 봄.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졸펜호른 마을 부근의 채석장엔 폐 질환을 심각하게 앓고 있는 석공이 있었다. 그의 기침 소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결핵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정규 의학 공부를 마친 내과의사 카를 해벌라인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석공은 돈 대신 까마귀 크기의 새 화석이 담긴 돌판 하나를 빼돌렸다. 이 돌판이 바로 훗날 ‘돌에 새겨진 오래된 날개’란 뜻의 아르카이옵테릭스 리토그라피카(Archaeopteryx lithographica)라고 불리게 되는, 파충류의 뼈와 조류의 깃털을 가진 시조새의 완전한 표본이었다.

<13> 조류의 탄생

카를 해벌라인은 치료비 대신 쓸모없는 화석을 받아주는 착한 동네 의사가 아니었다. 그는 화석의 경제적 가치를 알고 있었으며 이미 화석으로 상당한 수입을 올리던 화석 사냥꾼이었다. 하지만 그는 74세의 늙은 홀아비였고 시집 못 간 딸이 하나 있었다. 딸에게 적당한 혼처를 마련해 주려면 많은 지참금이 필요했다. 노년을 품위 있게 보내기 위해서도 목돈이 있어야 했다. 이런 해벌라인에게 시조새 화석은 굴러들어온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시조새 화석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수천 점에 이르는 그의 소장품 전체를 사들여야 했다.

깃털 제거한 시조새는 공룡과 똑같아
멀리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리처드 오언에게 이 소식이 들렸다. 리처드 오언은 ‘공룡(dinosaur)’이란 단어를 만든 당사자다. 오언은 모든 생물 종(種)은 신(神)이 직접 창조했으며 진화 따위는 없다고 굳게 믿었다. 시조새가 진화론자의 손에 넘어가서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단계로 선전되는 위험한 상황을 방치할 수 없었다. 시조새 화석을 손에 넣은 뒤 가장 먼저 연구해 이 화석이 파충류와 조류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시조새가 박물관에 도착한 지 단 석 달 만에 오언은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단계가 아니라 그냥 최초의 새일 뿐이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렇게 얘기가 끝나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다윈의 불독’을 자처했던 영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 모두와 연관돼 있음을 보여주는 골격 구조를 예로 들면서 오언의 주장을 꼼꼼하게 반박했다. 그는 같은 졸펜호른 화석층(層)에서 나온 작은 공룡 콤프소그나투스 롱기페스(Compsognathus longipes)도 찾아냈다. 시조새에서 깃털만 제거하면 이 공룡과 모든 면에서 똑같았다. 완벽한 파충류인 콤프소그나투스가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단계인 아르카이옵테릭스와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조새는 정말로 새의 시조일까?

그 후 시조새를 둘러싼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물론 오언의 창조설은 일찌감치 배제됐다. 헉슬리가 주장한 논지의 골자가 유지됐지만 새롭게 나타난 증거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었다. 현재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에 따르면 콤프소그나투스가 속한 육식 수각류(獸脚類, 두 발로 걷는 공룡) 공룡에서 시조새와 새가 진화했다. 즉 시조새는 공룡으로부터 진화했으나 새의 시조는 아니며 새는 공룡에서 따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새를 새라고 부르게 하는 특징은 무엇일까? 하늘을 나는 것, 알을 낳는 것, 둥지를 짓는 것, 소리를 내며 우는 것 등이 모두 새의 특징들이다. 하지만 각각의 특징을 가진 동물들은 수없이 많다. 새를 새답게 하면서 오로지 새에게만 있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깃털이다.

조류 조상의 깃털 용도, 종따라 달라
새들은 다양한 형태의 깃털을 소지하고 있다. 솜깃털은 작고 솜털이 많아서 몸을 따뜻하게 유지시켜 준다. 칼깃형 깃털은 뻣뻣하고 줄기가 두꺼우며 양쪽에 날이 서있고 비행에 사용된다. 그동안 고(古)생물학자들은 까마득한 옛날, 새들의 조상이 원시적인 비행이나 활강을 시작한 이래 줄곧 하늘을 날기 위해 칼깃형 깃털을 진화시켜 왔다고 주장했다.

이미 150년 전에 끝났을 것 같던 시조새 논쟁이 최근 새롭게 시작됐다. 2011년 독일 바이에른 주(州)에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시조새 화석이 새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전에 발견된 시조새 화석과 마찬가지로 날개엔 비(非)대칭적인 칼깃형 깃털이 있었다. 누가 봐도 비행(飛行)을 위해 적응(진화)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칼깃형 깃털들이 날개가 아닌 뒷다리에도 난 것이다. 독일 뮌헨 대학의 크리스티안 포스와 올리버 라우호트 박사는 깃털이 뒷다리까지 퍼진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 뒷다리 깃털이 비행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뮌헨의 연구팀은 중국에서 발굴된 원시조류와 그 후손들의 화석을 분석했다. 그 결과 칼깃형 깃털을 가진 동물의 상당수가 비행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어떤 동물은 날개 길이가 너무 짧았고, 깃털이 달린 곳이 날개가 아니라 모두 제각각이었다. 과연 날개가 날기 위한 장치이기나 한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날개가 정녕 날기 위한 것이라면 이렇게 광범위한 변동성은 상상할 수 없다. 비행체 설계에 한 치의 오차라도 있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올해 7월 2일자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조류 조상의 깃털은 종(種)에 따라 서로 다른 목적, 예를 들어 암컷에게 구애를 하거나 방수(防水) 또는 보온(保溫)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하늘을 날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신체 부위 가운데 깃털을 선택해 전문화된 비행 도구로 진화시켰다. 흥미롭게도 모든 조류가 일제히 날게 된 것은 아니며, 조상이 다른 새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날기 시작했다”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연구자들의 의견은 팽팽하게 갈려 있다. 초기 칼깃형 깃털의 형태와 패턴으로 봐 깃털이 ‘맞선을 위한 멋 내기’ 용도였다는 견해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다수를 이룬다. 하지만 뒷다리에 난 칼깃형 깃털이 길고 겹쳐져 나는 방식 등이 전형적인 비행형 깃털과 같은 것으로 봤을 때 비행기를 떠오르게 하는 일종의 익형(airfoil)의 역할을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새가 공룡의 후예란 것은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공룡은 언제부터 새가 됐을까? 이 질문은 공룡이 언제 깃털을 갖게 됐는지와 연결된다. 최근 20년 동안 초기 조류와 깃털 공룡의 화석이 수천 점이나 발견됐다. 이에 따라 학자들은 조금 더 구체적인 증거를 찾게 됐다. 과학계에서 『네이처』와 쌍벽을 이루는 학술지인 『사이언스』 7월 24일자엔 “까마득한 옛날, 거의 공룡이 탄생하던 무렵부터 공룡은 깃털을 갖고 있었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즉 공룡은 지금부터 2억 4000만 년 전 지구상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깃털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태초에 깃털이 있었다.’ 쥐라기의 초식 공룡 쿨린다드로메우스의 온몸엔 깃털이 나 있었다. 어쩌면 모든 공룡의 공통 조상도 깃털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초식 공룡도 육식 공룡처럼 깃털 소지
공룡 깃털의 가장 훌륭한 증거는 1억 5000만 년 전의 육식 공룡에서 발견됐다. 이 무렵 육식 동물인 수각류 공룡에서 새가 진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최근 초식 공룡에서도 ‘깃털과 비슷한 구조체’가 종종 발견되고 있다. 1억 2000만 년 전의 프시타코사우루스와 1억 6000만 년 전의 티안유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가진 뻣뻣한 털 모양의 구조체가 초기 깃털이 분명하다면, 공룡에서 깃털이 진화한 것은 용반류(도마뱀의 골반을 닮은 공룡)와 조반류(새의 골반을 닮은 공룡)가 갈라진 2억 년 전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라는 말이 된다. 새는 조반류가 아니라 용반류에 해당한다.

육식 공룡의 원시 깃털의 복잡성과는 달리 초식 공룡에게서 발견되는 한 가닥 섬유 모양의 구조체가 너무나 초라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깃털이라고 부르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러시아의 고(古)생물학자인 소피아 시니트사 박사 연구팀이 시베리아 동쪽의 쿨린다 계곡 인근에서 발견한 공룡 화석은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 화석들은 원시 깃털의 전형적인 특징인 복잡한 다(多)섬유성 구조를 지녔다.

러시아 연구팀은 1억 7500만 년 전 공룡인 쿨린다드로메우스 자바이칼리쿠스(Kulindadromeus zabaikalicus)의 골격을 공개했다. 이름 가운데 드로메우스는 ‘달리는 자’란 뜻이며 나머지 부분은 화석이 발견된 지역의 지명이다. 이 공룡의 머리와 몸통엔 섬유 모양의 구조체가 있었다. 팔과 다리에선 더욱 복잡한 깃털 모양의 구조체가 보였다. 이는 육식 공룡에서 나타나는 깃털의 배열과 비슷하다. 육식 공룡처럼 간단한 모양의 깃털과 복잡한 모양의 깃털을 함께 가진 초식 공룡을 발견한 것이다.

러시아 연구팀은 쿨린다드로메우스가 하늘을 날았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초기 공룡 가운데 깃털이 난 공룡이 더 있을 수 있으며 나아가 광범위한 종류의 공룡들이 깃털을 갖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적어도 ‘깃털이 육식 공룡들 사이에서만 진화한 것이 아니라 초식 공룡들도 깃털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입증된 셈이다. 어쩌면 모든 공룡의 공통 조상도 깃털을 소지했을지 모른다.

이젠 새가 공룡의 후예란 표현은 부적절하다. 6500만 년 전 대부분의 공룡들이 멸종했을 때 살아남은 조류형 공룡이란 표현이 옳다. 새는 공룡의 후예가 아니라 살아남은 공룡인 셈이다.

1861년에 발견된 시조새의 화석 이후 새의 진화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국내에선 하마터면 시조새가 생물교과서에서 퇴출될 뻔했다. 이미 19세기에 결론이 난 오언의 주장을 아직도 한국의 일부 과학 교사들이 따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얘기가 멈추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