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의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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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물가대책의 일환으로서 치약「코피」등 1백93개 품목을 가격관리대상 품목을 선정, 연말까지 강력한 행정단속을 하기로 했다.
이러한 정부방침은 작년 경제안정화 시책 이후 펴온 가격자율화방향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서 물가 안정을 위해 행정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작년 초부터 가격에 대한 행정개입을 점차 줄인다는 방침아래 가격관리를 받는 독과점품목을 줄이는 등의 조처를 취해왔는데 당면물가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다시 종래의 방식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이다.
현재 한국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문제가「인플레」라는 점에서 물가안정을 위해서 가격에 대한 직접규제의 확대까지 불사하겠다는 고충은 이해할 만 하다.
요즘 매우 어렵게 돌아가고 있는 수출부진 등 국제수지 애로나 기업가동률 저하, 실업증가 등이 만성적 「인플레」에 의한 경쟁력 저하에 큰 원인이 있음을 인식해야겠다.
그러나 금년물가는 결코 낙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미 도매물가는 26%나 올랐으며 하반기에 유가인상 등 또 한차례의 파란요인이 있어 금년물가 상승률은 40%선을 하회하지 않을 전망이다.
작년에 물가가 18%가 올랐는데 금년에 다시 40%가 뛴다면 그 여파는 심대할 것이다. 따라서 물가안정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가 가격관리대상품목을 확대한다는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거기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
즉 가격의 직접규제는 당장엔 효과가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길게 가면 가격 및 수급의 왜곡을 가져온다. 과거물가 상승에 대한 대증요법으로서 가격규제가 자주 동원되었지만 그것이 장기화하면 결국 형해만 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물가란 결코 행정력으로 안정되는 것이 아니다.
독과점품목도 가격의 직접규제 보다 경쟁제한 및 불공정거래 요인을 제거하여 가격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정부가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법을 제정한 근본취지도 그런데 있을 것이다. 기업의 독과점도를 오히려 높여놓고 독과점가격의 안정을 기대하는 것은 경제 논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가안정은 기업 간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룩될 수 있다.
불황기일수록 적극적인 기술혁신에 의한 원가절감과 거기에 유발된 판매촉진이 요구되는 것이다.
독과점품목의 가격 안정은 경쟁체제의 유도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금년의 물가상승은 전과는 달리 유가인상 등 「코스트·푸시」요인이 주인을 이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워낙 불황으로 구매력이 감퇴되었기 때문에 기업자의에 의한 편승인상 등이 어려운 실정이다.
제값을 못 받고 투매하는 경우도 많다.
행정규제에 의한 물가억제의 폭은 매우 적은 것이다.
따라서 현재 급한 것은 근원적으로 원가를 줄일 수 있는 방도를 찾는 것이다.
그것은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줌과 아울러 기업원가의 상승요인을 줄여주는 일이다. 기업의 기업외적 지출을 최대로 줄여야한다.
현 한국의「인플레」는 복합요인들이 오래 누적된 것이므로 이를 단시일에 수습하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오히려 더디고 답답할지 모르지만 경제논리에 의해 순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길게 보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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