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작가들은 이 세상이 간교하고 탐욕적인 어른들의 몸짓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님을 반대증명하기 위해 곧잘 「어린이」 의 세계를 상정한다.
이러한 순진무구한 세계의 상정을 필요로 하는 작가들은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혹은「내레이터」로 삼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두 가지 방법을 혼합시키기도 한다.
대체로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우보다「내레이터」(「업저버」의 뜻도 포함됨)로 삼는 경우가 보다 더 극적인 효과를 낳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일남의 <달리는 거위들>(한국문학 7월호)이 일단 후자의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면 서영은의<시인과 촌장>(창작과 비평 여름호)은 전자의 방법에 뿌리를 둔 것이라 하겠다.
우선 <달리는 거위들>이 보여 주고 있는 특이한 점은 통념으로 볼 때 과히 잘 나지 못한 아버지를 국민학생인 아들이 조금도 탓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소년은 아내를 젊은 동료에게 빼앗기고 또 동료들 사이의 비밀을 웃사람에게 고해 바친 사람을 구타하고 게다가 술 취한 김에 높은 사람 욕을 했다 파출소에 걸려들어 가는 등등의 행태를 보이는 아버지를 미워하기는커녕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본받으려고 한다.
아버지가 파출소에 들어가서 혹은 웃사람에 불려가서 곤욕을 치르는 동안 아들은 똑같은 용건 즉 동료를 때렸다는 점 때문에 담임선생님에게 불려가 꾸지람을 듣는다.
소년은 아버지가 자기를 호강시켜 주지는 못하고있지만 최소한 일정한 줏대는 갖고 살아 간다고 생각한다. 소년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거칠면서도 원색적인 삶은 그 나름의 명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명분은『어떠한 경우에라도 남을 밀고하지 말라』는 일종의 생활신조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대체로 이러한 내용을 들려주고 있는 이 소실을 통해서 우리는 어린이가 시비선악의 개념이 채 자리 잡히기도 전에 얼마나 쉽게 어른에게 감염되어 버리는가 하는 점을 근심어린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어린이를 내세워 추악하고 비인간적인 어른들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비판해 보려한 여타 소실에비해 이 소설은 다소 특이한 관점을 취해 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서영은의 소실<시인과 촌장>에서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소년은 자기 집 내부사정보다는 그 호기심어린 눈으로 볼 때「이상한 사람」들이 살고있는 이웃집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둔다. 바로 옆집에 사는「미친놈」, 새로 이사온 벙어리인 정자언니, 또 바로 옆집 부자아줌마, 학교에서 제일 힘쓰는 철구네「그룹」등등은 소년을 가장 힘있게 끌어 잡아당기는 그 어떤 요인들을 상징하는 존재들이 되기에 넉넉하다.
이 작품은 소년 (일반적인 의미의 소년)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요인 중에서 특히 병적인 것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으로 이상과 정상의 개념, 빈부의 개념, 성, 그리고 「힘」혹은 폭력의 의미를 주목하게 된다. 결국 서영은도 최일남과 마찬가지로 삐뚤어진 어른의 세계를 소년의 세계에 고치 함으로써 어른들의 수원지인 어린이가 얼마나 허망하게 더럽혀지기 쉬운 것인가 하는 점을 암시하게 된다.
이청의<우리들의 초상>(문예중앙 여름호)은 자유당말기 시절 부산을 배경으로 한 어느 중학생들의 의식세계와 행동방식을 그려 보이고있다.
중학생들에게 무슨 의식세계가 있겠느냐 하고 반문을 무시할 사람이 많겠지만 바로 이러한 상식의 배반을 펼쳐 가는데서 이 소설의 특징이 자리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무 걱정 없이 자라고 또 탄탄한 장래가 보장된「내」자신마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이들 「빗나간 자」들의 행동방식은 처절한 고뇌와 심각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두고 있는데서 빚어진 것이다.

<△건국대교수· 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