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의 불신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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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45년7윌 영국의 총선은 노동당의 승리로 끝났다. 2백12석대 3백94석. 「처칠」수상은 그만 실각하고 말았다.
뜻밖의 결과였다. 5년3개월에 걸쳐 『피와 노력과 눈물과 땀』을 바쳐 세계최강의 「도이치」군과 싸워 이긴 「처칠」이었다. 조국을 파멸 속에서 건져낸 것이다. 그에겐 실로 인생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5년이었다.
그러나 국민은 이 승리의 영웅을 『노!』하고 거부했다.
전시에 필요한 지도자와 평화시건설에 필요한 지도자를 영국국민들은 냉철하게 분별한 것이다. 『…그 동안 변함없는 지지와 공복으로서의 나에게 보여준 온정에 대해 나는 깊은 감사를 국민 여러분에게 표하는 것을 나의 마지막 일로 생각합니다.』
「처칠」은 조용히 떠났다.
1969년4월28일 「프랑스」의 국민투표는 52%대48%의 표차로 승패를 가늠했다. 「드골」대통령은 공약대로 해임하고 말았다. 향리인 「콜롱배·래·되제글리즈」의 전원에서 이들 노부부가 유유하게 산책을 하는 모습은 차라리 한편의 서사시를 보는 것 같았다.
11년 동안의 재임중 그야말로 조국「프랑스」를 위난에서 건진 위인이었다. 전쟁에 상처를 입고, 전후12년 동안 무려 24회의 정권이 교대되는 혼란을 겪고 있던 「프랑스」에 그는 무엇보다도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었다. 개성과 위엄을 지닌 그의 정치는 바로 「프랑스」의 개성과 위엄을 확립시켰었다.
하지만 「프랑스」국민들은 역시 『노!』라고 했다. 국민의 생활을 무시하는 태도에 반대한 것이다.
「드골」자신은 국민들의 그런 반응에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드골」역시 표표히 떠났다. 그리고 화려한 장례도 마다하고 고랑에 묻혔다.
인간의 그릇은 다르지만, 이웃일본의 「오오히라」수상은 요즘 의회의 불신임을 받았다. 그는 사임하거나, 의회를 해산하고 국민에게 직접 신임을 묻는 길밖엔 없다.
앞으로의 정정은 그 나라의 일이지만, 어느 경우나 그 「종말」이 흥미있다. 상황은 어찌되었든 국민이 싫어하면 스스로 책임을 지고 그들은 미련 없이 물러섰다. 설득도 변명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지도자가 없다해서 정치가 결코 파탄에 이르지는 않는 것이다.
일본은 27년만의 정치에 이변이라고 떠들썩한 모양이다. 그러나 정국의 혼란은 볼 수 없다. 제도의 탓인지, 국민의 의식탓인지 지도자의 인격탓인지-. 아무든 우리 눈엔 신기하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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