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회정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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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 나라 한 사회에 있어 법과 정의가 일치할 경우 그 법은 가장 잘 준수되고 가장 잘 효력을 발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정의와 법간에 「갭」 이 있고 마찰이 생기고 혹은 정면으로 배치될 경우 그 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거나 개정운동이 벌어지거나 극단적으로는 효력을 발생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법의 실효를 보강하고 시민의 준법을 가능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법의 정당성 또는 타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제17회 「법의 날」 이었던 1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오늘의 우리 사회상황과 관련해 새삼 법이란 무엇이며 준법은 어떻게 해야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10·26사태」이후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안정과 질서유지도 준법으로만 가능하고 국민적 열망인 민주화의 달성도 온 국민이 법을 지키는 안정된 바탕 위에서라야 가능하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러나 오늘날 진행중인 사회 각분야의 제 변화를 볼 때 기존의 여러 법질서가 심한 도전에 직면해 있고, 같은 법이라도 구체적인 운용은 구시대와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이는 사례가 많다.
기본법인 헌법에 잘못이 많다는데 국민적인 합의가 모아져 새로운 기본법을 작성하는 노력이 진핸 중인만큼 그 잘못된 헌법을 전제로 제정된 수많은 법에 대해 도전과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정신이나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하지 못한 법체계를 갖고있는데서 오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급격한 사회변화가 휘몰아치는 전환기에 있어서는 기존법 체계를 관통하는 「앙샹·레짐」적 사회정의를 초월해서, 새로운 시대정신과 새로운 사회정의를 법 내재화하려는 움직임이 역사적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의 준법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국민에 준법을 설득해야 할 논리가 얼마나 갈등적이 될 것인가를 누구나 실감할 수 있다.
바로 이점에서 과도기가 길면 바람직하지 못하며 이 시대 이 사회의 정의를 법체계로 구현하는 일연의 민주화작업이 촉진돼야 한다는 당위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유의해야할 것은 현행법에 문제가 있다하여 이의 준수를 외면할 때 무엇이 올까하는 점이다.
설령 정당한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현행법을 지키지 않는 국민이 늘어간다고 할 때 사회가 그 법을 지키는 것보다 더 정의로운 상황이 될 수는 결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개개의 정의가 전체의 정의와 반드시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으며 개개의 정의간에 상호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란 결과를 예상케 하는 것이다. 결국 「악법이라도 법은 법」이란 인식을 갖고 준법하는데서 새로운 정의를 구현하는 새 법체계의 확립을 앞당길 수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행 법체계가 오늘날 왜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됐는가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정의보다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법을 만들고 국민보다는 행정우위로 법을 만든 데 그 원인이 있고, 또 국회가 집권자의 고무도장으로 전락하여 이런 입법을 막지 못한데도 한 책임이 있다.
80년대에 처음으로 「법의 날」 을 보내면서 어떻게 해야 국민 누구나 법을 지키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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