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시설 기준의 헌법사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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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개헌특위가 조문화한 새 헌법시안 가운데 출판의 시설기준을 법으로 정할 수 있게 한 규정이 출판계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출판계에 따르면 이 규정은 출판사에 일정한 수준 이상의 인쇄 시설을 법으로 강제할 근거가 됨으로써 결국 경제적 사유를 명분으로 자유로운 출판을 통제하는 결과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1천9백여 출판사 가운데 자체 인쇄 시설을 갖춘 곳은 30개사 안팎이라는 실태를 볼 때 출판사에 법정 시설기준을 강제할 때 사실상 출판은 과점상태가 되고 출판의 자유란 형식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특위가 이 규정을 그대로 둔다면 모처럼 마련한「사전허가 또는 검열의 금지」규정도 출판에 한해서는 실효가 없을 것이라는 출판계의 지적에도 공감이 간다.
원칙적으로 국가 기본법인 헌법에서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원칙을 주로 규정하고 사회 변동이나 경제 여건에 따라 가변성이 큰 사항은 규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야만 사회 변동에 따라 헌법이 신축성을 갖게 되고 잦은 개헌을 회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헌법이 제정 또는 개정 당시의 상황만을 반영하여 매사를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규정할 경우,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본의 아니게 위헌사태가 발생하거나 개헌 필요성이 빈번히 제기될 우려를 불식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출판의 시설기준 문제도 당초에 헌법 사항으로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특위안에도『모든 자유는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일반 유보조항 (34조2항)을 두고있는 만큼 장차 우리 사회의 여건이 달라져 혹시라도 출판에까지 시설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생긴다면 그때 입법을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오늘날 언론·표현의 자유 등에는 어떤 제약 장치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뚜렷한 국민여망인터에 이런 강치를 새 헌법에 두자는 것은 납득될 리 없다.
출판에 대한 시설기준은 유신헌법에도 없는 것이다. 유신헌법은『…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제한할 수 없다』는 법률 유보를 두고 있지만 현행 『출판사 및 인쇄소 등록에 관한 법률』에도 출판사 시설기준은 없다. 시설기준은 신문 등 정기간행물에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정기간행물 외 경우 저질언론의 남발을 규제하기 위해 일정한 시설기준을 부과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출판의 경우는 이와 같을 수가 없다. 저작·도화 등 정신적 창작물을 인쇄업자에게 가공, 제작케 하는 것이 출판이요, 또 그 행위가 부정기적이라는 점에서 이를 행하는데 있어 일정한 시설기준을 요건으로 한다면 시설을 못 갖춘 저작자나 출판사에는 중요한 표현의 자유의 하나인 출판의 자유가 사실상 봉쇄되는 것이다.
국회특위라고 해서 이런 점을 모를 리는 없다고 본다. 시안의 조문화과정에서 신문·통신 등의 시설기준에 관한 규정을 두면서 깊은 생각 없이 출판까지 포함시키지 앉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왜냐하면 출판시설기준 문제가 특위에서 전혀 논의된 일도 없는 것 같고, 특위에 참여하는 각 정당이 굳이 이 장치를 설치할 이해관계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위는 이제라도 문제의 19조3항을 정리해 항문의 의혹을 해소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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