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광부 부인의 말을 듣는다|"광부들의 얼굴은 검지만 마음은 깨끗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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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광부 소요사태로 『광부들은 폭동이나 일으키는 위험스런 사람들』 이라는 나쁜 인상을 남기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비록 석탄을 캐는 탄광촌의 아빠들이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깨끗하고 선량하다는 것을 광부의 아내로서 이번 기회에 말씀드립니다.
선량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참아 왔고 억눌려 왔습니다. 그러나 참는데도 한계가 있는 법.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분노가 폭발해 이번과 같은 소요 사태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물론 이 같은 폭력 사태가 그 원인이야 어쨌든 옮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신의 이해만을 앞세우는 기업주, 광부의 입장을 돌보지 않았던 일부 노조간부들은 이 기회에 깊이 반성해야 할 줄 압니다.
작업교대근무로 밤12시에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밤10시에 일터로 나가야 하는 광부들, 퇴근시간이 10분만 늦어도 행여나 사고가 난게 아닐까 마음 졸여야 하는 가족들. 광부 아빠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이를 헤아리지 못할 일입니다.
지하 수백m의 굴속에서 일을 마치고 나온다 해도 가난에 찌든 집밖에는 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 줄 문화시설이란 찾아볼 수 없고, 교통 불편으로1년내내 바깥 나들이 한번하기 어려운 생활입니다.
광부생활 10년이 넘어도 20만원이 채 안 되는 낮은 임금, 그나마 하루 결근에 2만원씩 깎여집니다.
결국 남는 것은 「규폐증」이라는 달갑잖은 질병으로 한참 일할 나이에 일자리를 잃고 쫓겨나야 하는 광부의 일생입니다.
바깥에서는 세상이 바뀌어 「정치의 봄」이 찾아왔다고 야단들입니다만 지하 수백m의 막장에서는 절박한 현실이 계속될 뿐입니다.
차라리 한 양동이의 물을 얻기 위해 산 비탈길을 내려가지 않아도 되고 대도시보다 2∼3배나 비싼 물가의 고삐를 단단히 붙들어 매주고 갱도 안의 끔찍한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들의 소박한 소망입니다.
당국은 이번 사태이후 현지 조사반을 보내 여러 가지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만 단순히『시끄러우니까 조용하게 한다』는데 그치지 말고, 광산촌 주민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려내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주시기 바랍니다. 아빠들의 검은 얼굴에 밝은 웃음이 찾아들 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김상림 <30·광부주부·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고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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