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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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고인은 자기가 노인이라는 걸 느끼지 못한다…결국 내 늙음이란 나를 늙었다고 보는 남의 것이다….』-
실명한 다음에 이렇게 늙음을 말한 「사르트르」가 폐기종을 앓던 끝에 조용히 숨졌다.
『사람들은 늙으면 죽는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니까 자기 인생의 한순간 한순간을 살다가 이를테면 청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죽게 된다. 그러나 자기 인생 또는 인생 일반이 그것으로 인하여 변경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사르트르」는 「카뮈」에 대한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죽음은 아무것도 바꾸어 놓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인생을 완결시켜 놓을 뿐이다.
「사르트르」의 사상의 가장 충실한 이해자이자 생활의 반려자였던 「보브와르」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또 말했었다.
『「사르트르」는 쓰기 위해 살아왔다. 그는 모든 것에 대하여 증언하고, 필연성에 비춰가며 그것을 사고하고, 새로이 창조하기 위하여 호출 받아 왔다.』
「사르트르」에게 있어 쓴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작가가 되기를 선택했다는 것은 바로 「앙가주망」 (참여)을 뜻했다.
『작가는 세계와, 특히 인간을 다른 인간에 의해서 폭로한다는 것을 선택한 것이며… 아무도 세계를 무시하지 않고 아무도 세계 속에 있어서 책임이 없다고 자칭할 수 없도록 행동하는 것이 작가의 기능이다.』
「사르트르」 자신이 그 『문학이란 뭣인가』에서 밝힌 작가론이다. 이리하여 그는 전후의 폐허를 딛고 실존주의의 시대를 만들어낸다. 그의 가장 큰 명제는 『자유』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유를 느끼면 느낄수록 상대방의 자유를 승인한다.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그에게 요구한다.』
사실, 「사르트르」처럼 자기 사상을 그대로 생활화시킨 사람도 드물다. 「사르트르」와 「보브와르」와의 기묘한 계약 결혼도 그에게 있어서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우리의 유대는 그것을 지키려는 한 존속될 것이다.…그것은 구속이 되거나 타성이 되어버려서는 안 된다….』
「보브와르」의 회고담이다.
「사르트르」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자유 속에 뿌리를 내린 인간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었다.
따라서 그가 「앙가주망」을 내세웠던 것은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이웃들과 더불어 그들의 자유에 호소하여 함께 오늘의 세계를 변혁시켜 나가려는 원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정한 세계가 나에게 부여된다면 그것은 정이 부정을 그냥 차갑게 바라보려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이 세계에 생명을 주려는 것이다.』
그는 그가 살던 시대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발언을 했다. 늙음만이 그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제 그는 과거의 영광에만 묻혀가며 떠나는 것 같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스스로의 삶이나 세계에 대하여 그만큼 성실하지 못해진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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