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신호 무시 1분 뒤에 쾅 … 관제센터 "멈춰라" 지시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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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직원들이 23일 오전 무궁화호와 관광열차 충돌 사고가 난 강원도 태백시 영동선 태백역∼문곡역 사이 철길에서 열차 분리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22일 강원도 태백에서 발생한 열차 충돌사고는 정지신호를 보지 못한 관광열차 기관사의 과실이 1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태백역 관제센터의 안전조치도 미흡했다.

 기관사 신모(49)씨는 경찰 조사에서 “신호를 확인하지 못하고 달렸다. 달리는 도중에 인근 태백역 관제센터에서 별도의 안전 조치를 전해오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열차 운행에 이상이 생기면 관제센터는 무전으로 “열차를 멈춰라” 등의 지시를 내려야 한다.

 코레일에 따르면 충돌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문곡역에서 1.2㎞가량 떨어져 있다. 관광열차는 문곡역 진입 무렵 시속 35㎞로 운행 중이었다. 하지만 역을 빠져나갈 때는 시속 80㎞ 이상으로 속도를 높였다. 역 진입에서 사고 지점까지는 1분 정도가 걸렸다. 코레일 관계자는 “역에 진입할 때는 규정에 따라 속도를 낮춰야 하지만 빠져나갈 때는 높여도 된다”며 “정지 신호를 보지 못한 기관사가 역을 빠져나가면서 정상 속도로 끌어올리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기로 운행하는 관광열차는 몇 초 만에 속도를 수십㎞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열차가 시속 100㎞로 달리다 급정거를 하면 500m 정도 미끄러진 뒤 정차한다.

 이에 따라 태백역 관제센터에서 제대로 관제를 했다면 사고를 막거나 적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교통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열차 진입 즉시 이상 신호를 감지했다면 사고 전에 열차를 세울 수도 있었다”며 “관제센터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코레일 관계자는 “관광열차의 이상 운행을 감지했지만 시간이 촉박해 대응이 늦었다”고 말했다.

 영주지방철도경찰대는 신씨가 왜 정지 신호를 확인하지 못했는지와 태백역 관제센터가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도 사고 현장의 신호체계와 관광열차 자동제어장치(ATS) 등의 결함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오려면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소방당국과 열차 승무원들의 신속한 대응이 피해를 줄인 것으로 밝혀졌다. 태백소방서는 사고 2분여 만에 구조작업에 나섰다. 관광열차 승무원 박시원(22)씨는 정신을 잃은 승객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했다. 팔·어깨를 다쳐 입원 중인 박씨는 “승객이 전부 내렸는지 확인하고 열차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사고 구간의 열차 운행은 23일 오전 8시50분부터 재개됐다.

태백=이찬호·최종권 기자
대전=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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