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하는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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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26」정치파동으로 잡혀간 의원이 11명이나 되었으나 피신한 의원도 많았다. 내각책임제개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승만대통령의 미움을 사게된 20여명의 의원이 도피했다. 엄상섭(광양) 오위영(울산갑) 김영선(보령) 유홍(영등포을) 김광준(울진)의원등이 모습을 감추었다.
나도 소식을 알아보니 1차로 국회의원집을 포위하여 「테러」를 가하고 2차적으로는 국제공산당으로 몰아서 잡아간다는 소문이었다. 국회에 나간다는 것은 호랑이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이 생각됐다. 뿐만아니라 아무리 강압적이라 하더라도 이박사의 생각을 저지할 방법은 있었다.
현행헌법이 살아있는 한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방법밖엔 없으니 불출석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부산에서 양계로 생계를 삼고있던 어느 문학자의 댁에 피신했다.
국회 분위기가 엉망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가관인 것은 이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는 자유당 합동파까지 국회출석을 거부하는 사태를 벌였다.
6월2일 「유엔」 한국위원단에서 국회의원 수난사건에 대해 비판적인 성명을 발표하자 방만수의원(경산)이 『「유엔」한국위원단의 성명은 내정간섭이므로 외무장관을 출석시켜 진상을 따지자』는 내용의 「국무위원출석 요청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으나 부결됐다.
그렇게 되자 자유당 합동파의원들이 『살인범 서민호를 석방하기에만 열중하며 국제공산당과 결탁해 밀수입된 자금으로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가 폭로되어 체포된 국회의원들의 석방을 결의한데 승복할 수 없다』면서 『외세의 내정간섭을 당연하다고 외세에 의존하여 정권탈취에만 급급하는 그들과 함께 국사를 논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등원을 거부했다.
이갑성(대구병) 여운홍(양평) 윤치영(공주을) 임영신(금산) 양우정(함안)의원둥 52명으로 재적의원 3분의l가까이 달했다. 매일 국회가 공전됐다. 그래서 오히려 잔류 의원들이 『…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일국의 공당을 역적시한 성명을 취소하고 국회에 나오라』는 요지의 「자유당(합동파)의원 출석 공고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반이박사파 의원들은 잡혀가거나 숨어다니고 친정부 자유당 합동파는 활동무대인 음식점 삼우정에만 몰려 정국이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되자 남아있는 의원들이 대통령의 국회출석을 요구하고 나섰다.
『개헌논쟁으로 정국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으므로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있는 대통령을 출석시켜 진지하게 논의함으로써 서로간의 오해를 풀고 난국타개책을 모색하기 위해 대통령의 출석을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이박사는 출석을 거부하고 대신 6월14일 공한을 국회에 보냈다. 답장의 첫머리가 『지금 정치사태로서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협의로 해결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는 내용으로 시작됐다. 『국회에서 민의를 너무 무시하고 한도에 넘치는 권리를 사용하다가 민중이 공분을 참지 못하여 대다수인 각도·각군의 정식대표들이 와서 국회해산을 요청하고 있는 터이므로…여러분이 즉시 애국심을 다시 발휘해서 하루바삐 대통령직선과 국회양원제개헌을 다른 조건없이 즉시 통과시켜 국민의 요구를 수행하기로 결정하면 본 대통령은 민중에게 담보해서 국회를 해산하기에 이르지 않고 민의를 복종하여 진행하기를 자담하는 바이다.』 국회는 대통령의 출석요구가 묵살되자 대통령의 임기문제를 들고나섰다. 사실 그 당시 대통령의 임기문제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박사가 48년7월24일 대통령에 취임했으므로 임기는 52년7월23일로 만료되는 것이며 따라서 2, 3개월 전까지 개헌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대통령선출은 간선제인 당시 헌법으로 치러야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임기만료가 임박한 오늘날 대통령의 임기개시 기산을 대통령선거일(48년7월20일)로 할 것인가 또는 취임일(48년7월24일)로 하느냐, 아니면 정권이양일(48년8윌15일)로 할 것이냐는 문제에 논란이 분분하므로 매듭을 짓는 것이 시급해 임기 종료일을 7월23일로 확정하자』는 대통령임기에 관한 결의안이 원내자유당에 의해 제출됐다.
이박사의 재선을 획책하는 개헌안이 내각책임제개헌을 주중하는 야당에 의해 심의가 지연되고 있던 터였으므로 임기에 관한 결의안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울릉도출신인 신라회의 서이환의원이 여당의 의견을 대변해 『임기만료를 7월23일로 할 경우 대통령부재라는 불상사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정권이양일로 하자』는 개의를 내어 야당인 민국당의 「보이코트」속에 가결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정부가 내놓은 개헌안의 심의가 늦어지고 있어 시간을 벌기위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촉박한 형편에서 20여일을 번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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