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책임총리 걸맞게 권한 위임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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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총리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또 대통령은 국가 전략과제에 집중하고 총리는 정부업무를 담당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과 총리간의 이러한 업무분장 방안은 다소 늦은 감은 있어도 적절한 방향설정이다. 대통령과 총리간의 역할분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국정운영을 실천해 보여야 한다. 그것이 새 정부 출범 전부터 내세운 '책임총리제'에 부합하는 것이다.

사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에 두루 정통한 고건 총리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 북핵 및 주한미군 위상 문제 등으로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됐을 때 高총리가 '주한미군 관련 3원칙'을 제시해 한.미 양국간 긴장은 물론 국민의 불안을 상당 부분 해소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일시적 현상으로 그쳤을 뿐 국정을 전면에서 챙기고 행정부를 통괄하는 책임총리다운 면모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대통령이 공기업 노조와 사장 임명문제를 논의하는 등 국정 구석구석을 챙기고 간여하면서 결국은 과거와 같이 '의전총리'로 머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총리가 "재벌 내부거래 조사를 미루자"고 말한 바로 다음날 공정거래위원장이 "속도조절은 없다"고 반박하는 듯한 민망한 모습은 총리의 행정부 장악력을 의심케 했다. 특히 종합청사 통합브리핑룸을 청사별관에 설치한다는 홍보처의 계획을 총리가 신문보도로 알게 된 해프닝은 책임총리론의 한계성을 단적으로 말해준 사례다.

취임 초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미세한 부분까지 직접 관심을 표명해 여러 부정적인 면이 부각됐었다. 대통령이 이를 의식해 총리의 국정통괄을 강조했다니 다행스럽다. 문제는 대통령이 제시한 방안이 정말 실현될 것이냐는 데에 있다.

역대 정권 중 최대의 조직과 인원을 확보한 청와대에 대한 독주의 우려가 나오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 공약대로 책임과 권한을 지닌 총리가 명실상부하게 국정운영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