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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업무는 총리가 하도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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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14일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재해 총리실과 청와대 업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정할지 제도적으로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盧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부처 보고가 이제 마무리됐으니 대통령은 국가전략과제에 집중하고, 일반 부처 정책과 국정조정은 총리실에 맡겨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송경희(宋敬熙)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 현판식에서도 盧대통령은 "대통령의 (정부 업무에 대한)방향제시나 감독 업무를 줄이려 한다"며 "부처 업무는 장관이 하고, 정부 업무는 총리가 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국정과제 추진을 위한 위원회와 태스크포스를 중심으로 국정의 장기과제 전망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盧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전에 약속했던 '책임총리'를 다시 한번 강조한 발언이다. 宋대변인은 이날 발언 배경에 대해 "'총리의 역할을 강화해 국정조정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유인태 정무수석의 건의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선 盧대통령의 지시 시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고건(高建)총리가 새 취재시스템에 대해 "행정정보 공개의 확대가 선행돼야 한다"며 제동을 건 바로 다음날 나왔기 때문이다.

高총리는 최근 기자실 통폐합 등 취재시스템 개선안과 직속기관인 국무조정실의 차관급 직제 신설 등을 놓고 자신의 뜻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보여왔다. 총리실 관계자는 "총리실과 사전협의도 없이 국정홍보처가 통합 브리핑룸의 청사 별관 설치를 추진하려 하자 총리가 문제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문제는 盧대통령의 언급이 총리의 실질적 권한 강화로 이어질 것이냐다. 매우 미묘한 사안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약속한 '책임총리'는 '분권과 자율'이라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며 "대통령은 국정에 대한 파악이 거의 마무리됐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미관계 개선 등 핵심적인 국정과제와 개혁의 큰 방향만을 챙기고 나머지 업무는 총리에게 위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은 "문제는 총리에게 권한을 얼마나 이양하느냐가 아니라 총리가 국정수행에서 얼마나 대통령과 호흡을 잘 맞추느냐에 있다"며 "총리가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방향을 완전히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盧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高총리를 달래고, 권력핵심 간의 힘겨루기를 막기 위해 대통령이 나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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