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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정보기관 "부크 발사 뒤 러시아 복귀" 사진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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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크라이나 흐라보브 지역에 추락한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잔해 위에 19일(현지시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과 인형들이 놓여 있다. [흐라보브 로이터=뉴스1]
19일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SBU가 공개한 사진. MH17편을 격추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제지대공미사일 시스템을 실은 트럭이 러시아로 향하는 모습이 담겼다. [사진 SBU]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을 누가 격추했는지 밝히는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향방은 물론 국제 정세의 주도권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뉴요커가 지적한 대로 아직은 “현장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결정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네 탓 공방’도 각자 수집한 정황 증거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CNN을 비롯한 외신이 MH17편 격추에 따라 거세진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을 ‘정보 전쟁’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판세는 러시아의 완패다. 미국은 물론 군사력에서 한참 열세인 우크라이나마저 의외의 정보력을 과시하며 러시아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사고 직후 러시아는 자국 항공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을 노린 미사일이 MH17편을 격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SBU)은 친러 반군과 러시아군 장교 간의 전화 통화를 도청한 자료를 공개했다. “방금 비행기를 격추시켰다” “100% 민간 여객기다”라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통화였다.

 우크라이나 측은 19일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공세를 이어갔다. 이 자리에서 SBU의 총책임자 비탈리 나이다는 “우리에겐 확실한 증거가 있다”며 다른 증거를 제시했다. MH17편을 격추한 것으로 보이는 러시아제 SA-11 지대공 미사일 ‘부크’ 가 촬영된 사진 여러 장이었다. 그는 “러시아 언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비행기 격추는 러시아가 가담한 가운데 계획되고 실행됐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MH17편이 격추된 직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이 미사일 시스템의 궤적을 쫓고 있다. 이를테면 격추 직후에 촬영된 사진 속에선 미사일이 발사된 후 비어 있는 발사대가 등장한다. 발사대의 연기는 격추된 여객기가 추락한 지역에서 가까운 스니즈네 마을에서 피어 오르고 있다며 구체적인 장소까지 명시했다. 18일 오전 2시에 찍힌 사진엔 ‘부크’ 시스템을 실은 2대의 대형 트럭이 러시아 국경 인근 마을에 정차한 모습이, 오전 4시 사진엔 ‘부크’ 시스템을 실은 트럭 등 또 다른 3대의 차량이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가는 장면이 담겨 있다.

 SBU는 또 친러 반군 점령 지역에서 활동 중인 요원으로부터 수집한 정보라며 “격추 3일 전인 14일 러시아의 미사일 발사대가 우크라이나 영토로 넘어와 반군 손에 들어갔다는 ‘힌트’를 얻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3일 전엔 ‘힌트’였지만 “러시아로 복귀하는 미사일 시스템을 보고 러시아의 개입을 확신했다”는 설명이다. 일련의 사진 공개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테러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증거까지 인멸하고 있다고 몰아가는 셈이다.

 반면 수세에 몰린 러시아는 더 이상의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주장만 반복할 뿐이다. SBU는 “우리가 가진 증거와 데이터를 미국을 포함한 사고 당사국과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이번 사건을 지렛대 삼아 러시아에 대한 고삐를 죄려는 가운에 러시아는 속수무책인 모양새다.

 한편 친러 반군이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피아식별장비를 갖추지 못해 MH17편을 오인 격추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8일 러시아 국영통신사 RIA 노보스티는 콘스탄틴 시프코프 지정학연구원 원장의 말을 인용, “부크로 불리는 SA-11 미사일은 목표물을 인식하기 위한 별도 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전했다. 애초 우크라이나 수송기를 목표로 삼았지만 이런 별도의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피아 식별을 하지 못한 채 민간 항공기를 격추시켰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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