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닦이학사」탄생|두려운 것 없는 「억척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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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막상 졸업을 하게되니 새로운 도전을 앞둔 긴장감을 느낍니다.』
25일 동국대졸업식에서 감격의 학사모를 쓰는 「구두닦이학사」 김영춘씨(31·정외과)의 말이다.
지난15년동안 신문팔이·행상·구두닦이로 피눈물나는 고생을 이겨온 김씨는 『두려운 것이 없다』는 표정이다.
김씨의 고향은 전남곡성군목사동면죽정리. 가난한 농가에서 6남매중 둘째로 태어난 김씨는 고향에서 국민학교를 마치고 집안일을 도왔다.
김씨는 17세되던해 무작정 서울행 야간열차를 탔다. 더배워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서울역에 내렸으나 갈곳도, 잠잘곳도 없었다. 대합실에서 우선 잠을 자기로 하고 껌팔이를 시작했다. 하루 한끼로 생활하면서 푼푼이 돈을모아 양동에있는 한광고등공민학교에 입학했다.
68년 김씨는 검정고시에 합격, 대신고교에 진학했다. 첫번째 도전에서의 승리였다.
고교 3년동안 방과후 사환·행상· 신문팔이등 안해본것이 없다.
과외공부를 하지않고도 70년 무난히 예비고사에 합격해 동국대경외과에 입학, 꿈에도 그리던 대학생이 됐으나 2학기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입대해버렸다.
74년 제대를 했으나 사정은 마찬가지. 학업을 포기할 형편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공민학교 동창으로부터「구두닦이」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동창생도 구두를 닦아가며 M대학을 다니고 있었던것.
김씨는 친구밑에서 구두를 닦기시작, 북창동 T다방으로 독립해 나왔다. 『구두를 닦는 일을 부끄러워해서는 큰일을 할수 없다고 생각했읍니다.』 한달에 10만원 내외의 수입으로 생활비와 학비를 조달할수 있었다. 김씨는 지난연말 구두닦이터전을 후배에게 물려주었다. 흔히 있는 텃세도 받지않고-.
김씨는 앞으로 가난한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한번 해보고싶다고 했다. <문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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