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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2002 월드컵과 천연가스버스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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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브라질 월드컵이 독일의 우승으로 끝났다. 2회 연속 16강 진출을 소망했던 우리는 1무2패로 좌절했다. 잘나가나 싶던 브라질은 준결승에서 독일에 1-7, 3·4위전에서 네덜란드에 0-3으로 완패했다. 복지예산을 월드컵 인프라에 퍼붓는다는 반발을 무릅쓰고 투입한 12조원의 경제효과(53조원)는 공중 분해된 모양이다. 최대 수혜국은 중국, 노동집약적이건 첨단산업이건 싹쓸이했다고 한다.

 새삼 2002 월드컵을 추억한다.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엔도르핀이 샘솟는 것 같다. 우리는 환경 월드컵의 깃발 아래 동네마다 클린업리더를 선발하고, ‘붉은 악마’를 만나 협조를 구했다. 경기 휴식시간에는 대형 스크린에 주변 쓰레기를 치우는 클린업타임 애니메이션을 띄웠다. 시내 응원 모니터에도 똑같이 그 화면이 떴다. 해외 언론에는 구름같이 모인 군중의 뒤끝이 어찌 그리 깨끗하느냐고 기사까지 실렸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허리가 휘어지게 고생하는 환경미화원들과의 만남이었다. 미리 지역의 환경미화원 그룹을 찾아가 잘 부탁드린다고 고사떡과 주스로 건배도 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대표단 여러분을 1박2일로 온양온천 위로여행을 보내드렸다. 환경부 홈페이지에는 잘한 일이라고 칭찬도 올라왔다.

 이때다 싶어 밀어붙인 대형 정책사업이 있었으니, CNG(압축 천연가스)버스 보급이다. 당시 경기를 치르는 10개 대도시의 경유버스 매연은 배출허용기준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때마침 CNG 전용엔진 개발은 시범사업 단계였다. 그러나 좋은 신기술이라고 해서 시장 진입에 성공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신기술 대체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와 그에 걸맞은 사회적 인프라를 깔아줘야 한다.

 주무장관으로서는 사업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당시 CNG버스는 경유버스보다 2250만원 비쌌다. 그것을 메워주고 부가가치세·취득세·환경개선부담금을 면제해야 했다. 도시가스사업자 지원은 또 별도였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을 뵙고 열심히 설명드리면서 “국민의 정부가 끝난 뒤에도 우리 국민이 돌아다니는 CNG버스를 보면서 환경정책의 성공사례를 실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김 대통령께서는 쾌히 동의해 주셨다.

 그런데 이 사업은 환경부의 솔로 사업이 아니었다. 엔진 등 기술개발과 안전기준은 산업자원부·과학기술부·교육부 등과 엮여 있었다. 예산 지원은 기획예산처의 승인을 받고 지방정부와 손을 잡아야 했다. 그 무렵 환경성이 개선된 LPG버스가 개발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좁은 국내 시장에서 자동차 업계는 세 가지 버스의 제작을 꺼렸고, 부처별 시각도 달랐다.

 무엇보다도 이 사업의 아킬레스건은 CNG 충전소 건설이었다. 땅이 없었고,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불신으로 앞뒤가 꽉 막힌 듯했다. 급기야 건교부의 협조까지 끌어내 그린벨트 지역에까지 들어갔다. 충전소 준공에는 장관이 부랴부랴 참석했다. 국민가수 이미자 선생도 함께 했던 기억이 난다. 언론에 사진도 실렸으니까. 월드컵을 앞두고는 이동식 충전차량까지 도입해야 했다. 한참 동안 예산 집행률은 바닥을 헤맸다. 언론도 때리고, 국회도 열릴 때마다 추궁했다. “에고, 이럴 줄 알았더라면 시작을 안 했을걸” 하는 푸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장관을 끝내고 나니 잘한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공직을 끝낸 뒤에는 나 자신도 단골승객이 되었다. 월드컵의 이 유산은 버스 3만4000여 대와 청소차 1200대 등으로 불어났다. 최근에는 환경성과 연비를 높인 CNG 하이브리드 버스도 선보였다. CNG버스의 보급에 크게 힘입어 서울시의 미세먼지는 2000년에 비해 3분의 1 정도 떨어졌다. 환경 개선의 순편익으로 따지면 1조원이 넘는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내년부터 경유버스에 대한 환경기준이 유로-6로 강화된다. 온실가스 배출에서는 경유차 쪽이 더 유리해진다. 질소산화물과 입자상 오염물질 배출은 CNG 쪽이 더 유리하다. 중국발 스모그까지 날아오는 상황이니 미세먼지 컨트롤은 계속 중요한 정책과제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CNG버스에 대한 보조금 지원의 명분이 퇴색하게 되었다. 이를 반영하여 정부는 그동안의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중단한다고 한다. 기술혁신의 시대, 정부는 ‘기술지향’(technology push)과 ‘수요견인’(demand pull)이 잘 작동되고 역동성과 안정성이 조화되는 과도기적인 전환을 잘 이끄는 것이 과제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약력=서울대 문리대 화학과, 미국 버지니아대 이학박사, 환경부 장관, 국회의원,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현재 그린코리아21포럼 이사장,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