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재산 퇴직금뿐인 아내들 '이혼 결심' 늘어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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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소송 전문인 배모(여) 변호사는 17일 중앙부처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했다가 휴식시간에 공무원들로부터 질문공세를 받았다. 궁금증은 단 한 가지. “현재 배우자와 결혼하기 전부터 공직에 있었는데 이혼하게 되면 얼마나 연금을 나눠줘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전날 대법원이 미래에 받게 될 퇴직금과 퇴직연금도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는 취지로 판례를 변경한 데 따른 것이다. 배 변호사는 “국민연금처럼 공무원·사학·군인연금도 이혼 시 얼마나 연금을 나눠줄지 법으로 정해야지 법원 판결로 정하게 되면 불확실성이 클 수밖에 없다 ”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법원이 판례변경을 통해 그간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었던 미래에 받을 퇴직금과 현재 받고 있는 퇴직연금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이혼 법정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큰 기준은 정해졌지만 실제 재산분할비율을 정하는 하급심에서는 당분간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재산분할이 실제 어떻게 이뤄질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대법원은 미래에 받게 될 퇴직금·퇴직연금에 대해서는 사실심(1, 2심)이 끝나는 시점에 퇴직한다면 받을 수 있는 돈을 계산해 분할 재산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예컨대 2억원의 일반 재산과 2억원의 예상 퇴직금을 가진 남편과 1억원의 재산과 1억원의 예상 퇴직금을 가진 아내가 이혼할 경우 분할대상이 되는 재산은 총 6억원이 된다. 이 6억원을 갖고 법관이 혼인기간, 두 사람의 재산에 대한 기여도, 양육권을 누가 갖는지 등을 고려해 비율을 정하고 비율에 따라 금액을 나누는 식이다.

 현재 받고 있는 퇴직연금은 일반 재산과 별개의 비율을 적용한다. 대법원은 전체 재직기간 중 혼인기간이 차지하는 비율, 당사자의 직업 등을 고려토록 했다. 공직생활 기간에 비해 결혼 생활이 짧은 경우 일반 재산과 같은 비율을 적용하면 불공평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재산별로 따로 분할비율을 정하지 않고 하나의 비율만 정해 온 지금까지의 판례상 새로운 하급심 사례가 쌓일 때까지 혼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례변경으로 이혼소송, 특히 황혼이혼 소송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퇴직금 말고는 변변한 재산이 없는 남편을 둔 아내들이 퇴직금 받을 시기까지 미뤄뒀던 이혼을 결행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동거기간 20년 이상인 황혼이혼 건수는 3만2243건으로 이미 동거기간 4년 이하인 신혼이혼(2만7299건)을 앞지른 상태다. 강연재 변호사는 “그간 경제력이 없는 아내들이 황혼이혼을 하고 싶다고 변호사 사무실에 오면 극도로 상황이 나쁘지 않은 한 남편이 퇴직금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조언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교수·공무원·군인 등 연금액수가 많은 직종의 배우자를 둔 아내들이 상당수였다”고 말했다.

 이미 이혼했지만 재산분할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들도 소송을 낼 수 있다. 2012년에 접수된 이혼 소송은 4만4014건이다. 이중 재산분할청구도 함께 낸 경우는 1647건으로 전체 소송의 3.7%에 불과하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배우자가 재산이 없는 것을 아는 사람 중에는 지긋지긋하다며 재산분할 없이 이혼과 양육 관련 절차만 진행한 이들이 많다”며 “2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퇴직금을 나누자는 소송을 낼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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