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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난기류(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재야와의 역관계로 좌고우면>

<「정치여건」에 따라 당내계파도 재편성될 듯>

<「대이동」앞서 새로운 서클·새로운 당풍운동 머리 들어>
작년「5·30」전당대회에서 정상을 재탈환한 후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고 신민당의 「볕들 날」 을 은유 하던 김영삼 총재가 지난번 연두기자회견에선 『신민당이 집권하는 것 은 역사의 순리』라고 정권인수를 주장했다.
이민우 부총재가 작년 정기국회본회의에서『더 이상 여당도 없고 야당도 없다』고 선언한 후 이 말이 신민당의원의 유행어가 되더니 이제는 아예「집권야당」이란 말까지 서슴없이 오르내린다.
당원들도 신명이 나는 것 같다. 총재가 당사에 들고 날 때면 으레 껏 건강한 청년들이 앞뒤로 호위해 그 행렬이 볼만하다.
YH사태때 총재실 벽까지 발길질에 쓰러지고 「오버」룰 입어도 냉기에 떨어야했던 당사가 쾌적한 난방으로 바뀌었다.
드나드는 손님도 옛날과는 다르다. 뻔질나게 찾아오는 외국대사와 특파원 때문에 다섯 손가락 정도의 영어 통 의원들이 돌아가며 통역사역에 바쁘다.
5개 사고지구당의 조직책을 선정한다고 했더니 72명이나 몰려와 그 중엔 퇴역장성과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의사 등 지난날엔 좀체로 접근하지 않던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세상 많이 변했다』는 말이 신민당의원들이나 주변에서 보는 이들 입에서 저걸로 나온다.
최소한「10·26」후 이제까지는 창당이래 최초, 최고의 호시절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그렇지가 못할 것 같다. 넘어야할 고비가 「산 너머 산」이다.
정부나 다른 세력에 대해 민주화의 주도권을 장악해야하는 문제, 대통령·국회의원의 양대 선거를 대비하는 조직강화 및 경비문제, 이와 관련한 재야세력 또는 해외세력과의 관계,「만년야당」의 고질적 파행과 「이미지」개선, 수권능력의 구비 등 난제가 산적해있다.
현 여건상 민주화주도권은 신민당이 적극적 자세를 취할 수 없는 입장인 것 같다.
작년 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은 범국민적 협의기구를 통해 선출방법을 논의하자고 제의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투쟁」을 벌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천은 되지 않았다.
헌법개정도 1월25일까지 끝내야겠다고 제시했으나 실제로는 2월이 넘도록 공화당의 시안조차 끌어낼 수 없는 채 여당과 어울려 지방으로 개헌 공청회순례에 동행했고 지금은 부득이 정부의 외국헌법연구시찰단을 지켜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런 판국에 공화당에서는 김종필 총재가 간부당원교육이란 명목으로 지방주요도시를 누비며 나름대로 JP바람을 일으키려 하고있어 신민당 당권 파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의 대접전을 앞두고 전진을 가다듬으려면 당연히 대두되는 문제가 조직강화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이 조직강화 정비를 당장 착수할 수 없는 딱한 입장에 놓인 게 신민당이다. 큰 「숙제」가 풀리지 않고는 전망이 불투명하고 그렇다고 해서 때만 기다리자니 뒤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
김영삼 총재는 옆만 볼 수 없는 모양이다. 앞을 보면서 세력을 정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발을 내디뎠다. 지난 10대 선거 때 득표력이 미약해 당의 위신을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위원장자격을 박탈해 사고가 된 3개 지구당과 위원장의 별세 및 입각으로 유고가 된 2개 지구당의 조직책선정작업이 시작됐다.
유고지구당의 조직책을 선정한다는, 어찌보면 단순하고 사무절차로 보이는 이 작업마저도 신민당이 앞으로 열어야할 많은 『「판도라」의 상자』 중 하나인 것 같다.
조직책 선정계획이 발표되자 당 외에서 즉각 이의가 제기됐다.
당권파가 할 일 중 이것은 급하지가 않다는 얘기다. 『신민당은 빛을 지고있다』는 것이고 그 청산에 먼저 노력을 경주해 달라는 주장이다.
당권강화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를 댄다.
이에 대해 박한상 사무총장의 얘기는 정반대다. 「수권정당」채비가 시급한 신민당으로서는 조직정비야말로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논리를 내세워 당권파는 때로는 그들에게 유리하게, 때로는 주변을 의식하면서 이들 사고지구를 비롯한 11개 문제지구당을 정비하고 시·도지부결성과 중앙상무회의구성을 마쳐 당내 대통령후보경쟁에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당 외에서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조용히, 그리고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당 안에도 특정조직의 입회원서가 나돌아 다니고있고 8일에는 중견원외당원 50여명이 합동, 행동통일을 다짐하겠다는 것이다.
아직은 표면화되지 않고 있는 이 같은 당 내외의 꿈틀거림을 지켜보는 의원들의 자세는 착잡하다. 대별하면 태도가 분명한 소신파와 사태를 관망하는 신중파로 분류된다.
정치적 신념보다는 자신의 이해도 헤아려 행동해야했던 구체질과 당 내외의 새 질서, 특히 앞으로의 공천문제도 염두에 두어야하는 의원들 중에서는 이제까지 서있었던 위치에서 서서히 철수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고있다.
이들에게 과거의 계파는 무의미해지고 새로운 진영이 필요하다. 특히 현재 당권에서 소외되어있는 비주류 속에 이런 사람들이 더 많다.
계엄령·개헌·선거법개정 등에 따라 좌우될 정치여건이 계속불확정 상태인한「철수」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일단 정치가 활성화되면 「당원대이동」이 전개될 듯하다.
이미 △김영삼계△이철승계△신도환계△고흥문계△이충환계△유치송계△박영연계△이기택계△조윤형계△김재광계△정해영계 등의 계파 중 와해됐거나 휴지상태 인 게 과반수다. 이중에서 특히 박영록씨 중심의 화요회 와 김재광계의 이용희의원, 구 당권파에 가까왔던 일부 소장 의윈, 과거 옥고를 치렀던 전의원등이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되고있다.
이런 와중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지난날 불선명으로 찍혔던 사람들에게 화살을 겨냥하는 소장의원들의 숙정·신풍 소용돌이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그 바람이 더 거세어질 가능성도 높다. 특히 당 체질 개선과 「수권능력」의 구비를 위해 절실한 문제로 거론되고있는 당 외 인사와「참신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의 영입과정에서 진폭이 결정될 것 같다.
13명의 전·현직 통일당지구당위원장이 신민당에 입당했지만 당 외 정치세력은 「선신분확보·후정당활동 참여」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이들과의「결합」은 앞으로 겪어야할 가장 큰 일이다.
재야 측과의 역관계-. 이로 인해 신민당은 한계 있는 활기, 불투명한 전열, 혼돈의 정치포석을 하고있는 셈이다. 대통령선거의 큰 강을 건너기에 앞서 진통과 잡음과 혼란을 내포하고있는 신민당의 총재 김영삼씨의 머릿속만큼 어지러운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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