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외교」서 「힘의 외교」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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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카터」대통령이 작년 연두교서에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핵 확산 및 군사무기 억제와 인권외교의 강화였으나 금년 연두교서에서는 군사력 증강과 국방예산 증액을 강조했다. 『지난 3년 간 대통령 재임 중 미군병사가 전쟁터에서 피를 홀린 적은 없다』는 사실을 누차 자랑해온 「지미· 카터」로서는 대단한 「변신」이다.
미국의 새 회계 연도 국방비가 작년대비 5%가 증가한 1천5백80억「달러」로 늘어나고 월남전직후 「닉슨」대통령이 폐기했던 징병등록제를 부활키로 했다.
지원병으로 충원되는 현 미국의 모병제를 당장 없애는 것은 아니지만 유사시엔 언제든지 젊은이들을 동원할 수 있는 징병 등록 제도를 만든다는 자체가 「카터」에겐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고 모험이다.
「나토」(NATO)와 유사한 중동 각 국의 군사협력체제구상이나 대「파키스탄」 원조강화, 인도양에 대한 미군사력 증강 등은 「페르시아」만의 유전지대와 석유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한 힘의 대응책으로 볼 수 있다.
「페르시아」만의 안전은 미국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지역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미군사력을 동원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제 「카터」행정부가 소련의 침략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카터」가 취임한 이래 소련은 「쿠바」·「아프리카」·남 「예멘」·「이디오피아」등지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시켜왔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카터」정책의 이 같은 변화를 미국 내 여론이 「이란」사태는 인질 때문에 이해해 주었으나 「아프가니스탄」사태에서는 「카터」의 허약성에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고, ABC-TV는 대통령선거전에서 전망이 불투명하던 「카터」가 「아이오와」주의 승리에 크게 고무되어 이제는 미국인들을 이끌어갈 지도력을 되찾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카터」는 미국전역에서 일고있는 보수주의 물결을 잡아야만 대통령선거전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카터」자신이 인도양과 「페르시아」만은 역사상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으며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침공은 2차 대전 이후 세계 평화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강조한 것은 그가 순박한 꿈에서 깨어나 냉엄한 현실정치에 눈을 떴음을 의미한다.
「카터」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결의를 재 천명하고 철군정책과 박대통령 서거이후의 한국내 정치적 조정문제에까지 언급한 것도 이러한 흐름에서 이해돼야할 것이다.
물론 신중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지의 「존·오크스」는 『「히스테리」를 못 이겨 절제 있는 정책을 버리고 전면 대결이나 총동원 관념 등을 가지게 되면 더 큰 위기가 초래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치「업저버」들은 「카터」 연설내용이 과거의 정책을 상당부분 수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련의 팽창주의를 견제하는데는 미흡한 것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 소련이 계속 「카터」행정부의 의지를 시험하거나 소련의 태도여하에 따라서 미국의 후속조치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김건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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