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높은 대가 각오한 소의 군사적 모험|영 전략문제연구소 「앨포드」부소장, 장두성 특파원과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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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침공의 성격을 간단하게 규정짓는다면 그것은 공격형인가, 자위형인가. 예컨대 이 행위는 소련의 세력권을 수비하는데 목적이 국한돼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세력권의 확장을 겨냥한 팽창주의의 일단인가?
『소련에 대한 어떤 위협이 있어서 거기에 대응한 것이라면 자위형이라거나 공격형이란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그런 외부의 위협이 없었다. 나로서는 소련의 행동을 보호책이라고 규정짓고 싶다.
소련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방이 반란으로 불안정상태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막고 거기에 자기들에게 호의적인 정권을 안정시키려 한 의도가 무력침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행위를 그들 입장에서 규정짓는다면 소련의 남부전선을 안전하게 확보한다는 보호책이다]
-그렇다면 귀하는 소련의 행위가 인도양의 부동항을 확보하고 중간의 유전을 지배하기 위한 대 전략의 일환이란 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은 1차 적인 소련의 동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아프가니스탄」침공이 부동항에의 접근로를 열어준다는 이점을 그들이 계산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또 「파키스탄」 「이란」 등 인접국가에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계산도 이번 침공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고려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2차 적인 고려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군사작전 면에서 「아프가니스탄」침공을 「베트남」전쟁과 비교하는 경향이 있는데 과연 미군이 「베트남」에서 오랜 지구전에 말려 들었 듯이 소련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진퇴양난의 궁지에 빠져들 것으로 보는가?
소련은 여론에는 개의 안 해
『작전양태 면에서 볼 때 「베트남」 비유는 타당성이 별로 없다. 첫째, 「베트남」이 미국의 이익에 큰 관계가 없었던데 비해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다.
「베트남」이 미국으로부터 대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비해 「아프가니스탄」은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둘째, 미국이 「베트남」에서 대전한 적은 잘 훈련되고 정치적 동기가 뚜렷하며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는 조직된 집단이었던데 비해 「아프가니스탄」은 정반대다. 「아프가니스탄」의 반란군은 소련과 공산권에 대한 반대라는 한가지 점만 일치할 뿐 다른 모든 면에서 3분5열 상태에 있다.
이들이 통합된 저항세력으로 활동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셋째, 이들에게는 「베트콩」이 누렸던 것과 같은 광활한 성역과 후방이 없는데 비해 소련군은 국경 너머에 병참본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반란군에게는 「파키스탄」쪽에서 무기와 병력이 약간 공급되고 있지만 대수롭지 않은 규모다.
넷째, 소련은 미국처럼 여론을 고려하거나 국민들의 마음을 사는데 신경을 쓰지 않는다. 군사작전을 하면 철저하게 하고 그런 비군사적 요인에 신경을 쓰지 않고 막강한 무력을 쏟아 넣는 것이 소련의 「스타일」이다.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장기지구전에 말려들 가능성은 없지 않다.
소련식 작전으로는 산악지대에 박혀있는 반대세력을 뿌리뽑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외부세력이 「아프가니스탄」을 무력으로 점령한 후 법과 질서를 유지시킨 예가 전혀 없다는 데서도 소련군이 오래 그 곳에 묶여 있을 가능성을 예견케 한다.』
-소련의 침공을 반대하는 미국과 중공이 「파키스탄」과 중공 접경지대를 통해서 「아프가니스탄」내의 반란군을 적극 지원하면 소련을 장기간 궁지에 몰리게 할 수 있지 않은가?
미국이 소련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대응조치의 상한선은 곡물 금수나 「올림픽」불참 같은 것이 아니라 「베트남」전선에서 미국자신이 당했던 것과 같은 수렁 속에 소련을 그런 식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닐까?
어떤 외부세력도 평정 못 시켜
『이론상으로는 그럴 듯하다. 그러나 중공의 경우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선이 짧고 북경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병참지원이 기술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의 경우는 「이란」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그쪽으로는 못 움직일 것이고 「파키스탄」쪽으로 가야 되는데 「파키스탄」이 반란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첫째, 공개적으로 미국에 발진기지를 제공함으로써 소련의 보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할 것이고 둘째, 인도·「파키스탄」간의 역사적인 분쟁 때문에 「파키스탄」이 소련과 인도의 두 개 전선을 갖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은밀하게는 반란군을 지원하겠지만 공개적으로는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소련의 의도를 좌절시키려 할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사태와 한반도를 직결시켜 생각하는데는 무리가 있겠지만 소련의 침공이 소련지도부의 정책상 변화를 뜻한다면 무관할 수 없을 것 같다. 소련 지도층이 「브레즈네프」의 퇴장을 앞두고 호전적 외교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는 기미는 없는가?
『「아프가니스탄」이 침공 당했다고 한국이 종전보다 더 위협을 느낄 이유는 없다.
다만 소련은 자기들의 안보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경우 국제여론이나 자기들의 경제적 손해를 개의치 않고 무력사용을 감행한다는 그들의 생태를 증명했을 따름이다. 따라서 한국이 현재 소련에 위협이 되고 있지 않은 이상 소련의 위협을 받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한 동「유럽」국가들이 이런 점에서 더 큰 위협을 느낄지 모른다』
"데탕트는 결코 죽지 않았다"
-이번 사태의 첫 희생은 동서간의 「데탕트」라는 이야기가 있다. 상호간에 어느 정도의 신의를 바탕으로만 가능한 이 공존장치가 무력침공이란 충격 앞에서 끝장이 났다는 이야기는 주로 선거를 앞둔 미국 쪽에서 나오고 있는데 그런 냉전의 분위기가 대통령선거의 열기때문인가, 아니면 실제로 「데탕트」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는가?
『「데탕트」는 죽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는 「데탕트」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데탕트」란 우호관계가 아니고 양대 세력간에 대결위험을 줄여 보자는 공통된 이해의 소산이다.
이번 사태는 서방으로 하여금 조심스럽고 현실적으로 「데탕트」에 임하도록 만들었지만 아직도 「데탕트」를 유지하려는 쌍방의 이해는 일치하고있다.
혹시 미국 쪽에서 「데탕트」에 대한 반대가 커질지도 모르지만 「데탕트」에는「유럽」도 참여하고 있어서「유럽」은 이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로 중동에 근본적인 세력균형상의 변화가 있었다고 보는가?
『그건 앞으로의 사태진전에 달려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진주한 소련군이 현재의 6개 사단 정도에서 동결된다면 군사균형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란진압을 위해 증강군이 파견되기 시작하면 균형은 깨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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