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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신계발에 눈돌릴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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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나라의 기운은 그 나라 문화의 표출이요, 문화란 그것을 형성하는 국민정신의 발로다. 국민정신이란 다만 관념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위동적 격정으로만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념론자들은 정신의 수련만을 더욱 고취하고, 유물론자들은 경제의 발전만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난 역사적 사실에 비춰볼때 그런 한 방면만으로는 다 실패로 돌아갔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나라의 기운이란 다만 한 방면의 발전만으로는 이룩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정치 경제 사회 도덕 종교 예술등 정개적 휘융적 성숙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나라의 기운은 마치 샘솟듯이 곤곤히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왜정시대에는 흔히 쓰던 말로 『조선없이 해봐라, 되는가?』 라는 속어가 있었다. 조선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안된다는 뜻이다.
지정학적으로 볼때 한·중·일3국은 깊은 유대관련이 있으므로 극동에 있어 우리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위치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라는 뜻이다. 금세기에 들어와서는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인해 넓은 지구가,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하나의 작은 콩알만한 구로 되어버린것도 같다. 그리고 세계적인 문제의 중심은 때에 따라 순간적으로 뒤바뀌고 있다. 월남문제가 그려했고, 「이란」문제도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동아세력의 관건과 동양문화의 교차지는 아무래도 한국을 첫째로 손꼽아야겠다. 동남아의 군소국가들은 보잘것도 없고 수미산을 짊어진 인도도 유현심오한 종교는 낳았으나 현세적 정치면에 있어서는 구태의연한 정체성을 면치 못한 것 같고, 「시베리아」등도 살기좋은 곳은아닌 것 같다. 따라서 정치 경제 문화는 물론, 군사의 중심지로 한국이 한·중·일3국사이의 요위이라 하겠다. 그래서 『조선없이 해봐라, 되는가?』 라는 말까지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사가들은 말하되 우리 (배달족)는 수천년 사이에 수천번이나 외침을 당했지만 항상 용감하게 그 외침을 물리쳤으므로 우리는 배달민족으로 연면히 존속하며 또 우리문화를 잘 전승해 왔었다한다.
이 말속에는 우리배달족의 기운, 즉 혼이 굳세게 살아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그 반면 우리는 한 번도 외침을 해 본 일이 없었다고 자랑도 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과거 우리는 중국을 대국이라 하고 일본을 왜국(왜소국) 이라 했었다. 그러다가 일본이 명치유신을 계기로 세계적 강대국으로 등장하여 「러시아」를 이기고, 청나라를 항복시키니, 우리보국정들은 중국사대로부터 일본사대로 재빨리 머리를 돌렸다. 그래서 혹자는 말하기를 사대주의가 나라를 망쳤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대단히 바람직한 기장이다. 그런데 우리속담에 『앉은뱅이 산말린다』 는 말이 있다.
남이 내산에 들어가 나무하는 것을 보고 쫓아 가서 붙들지는 못하고 그저 앉아서 고함만 지르니, 무슨 소용이 있냐는 뜻이다. 이러고보면 사대주의는 말살해 버려야 한다. 그러나 사대없이 사소할 수 있는 기운을 길러야한다. 사소도 할 수 없는 기운으로 무턱대고 사대를 말라고만외치면 도대체 어찌 하자는 것일까?
도선비기에 삼십육국조천이란 말이 있다. 아마 삼십육국이 우리 한국에 조공을 한다는 뜻 같다. 삼십육국조공이란 원래 천자국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정감록비결이 이조때 항간에 유포되자 십승지란 피난처를 찾아 다니다가 마침내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허다했다.
그러나 그 반면 일본제국주의의 강렬한 억압밑에서도 우리에게 일루의 희망을 은밀히 안겨다 준 것도 또한 정감록이었던 것을 보면 정감록이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도 같다. 왜냐하면 한국은 장차 남통만리 북통만리의 대국으로서 군림한다는 미래상을 예언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6·25남침때 미국을 선두로 16개국의「유엔」군이 대한민국을 돕기위해 그 고귀한 생명과 막대한 군사를 가지고 와서 우리 한국을 섬기지 않았던가? 이러고 보면 36국까지는 못되더라도 16국 조공은 틀림없었다. 이에 『조선없이 해봐라, 되는가?』 란 말이 새삼 귀에 쟁쟁해진다.
한 왕조의 흥망을 보면, 창업기·수성기·강전기·쇠퇴기의 네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과거 왕조의 흥망성쇠를 구분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민주공화국이란 국가관도 예외일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8·15해방은 우리에게 민주공화국창업의 호기를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배반으로 말미암아 다만 남한만의 민주공화국을 창업하고 말았지만 그 창업수성을 위하여 동서역사상 유례없는 16국조공이란 기적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겠다. 그리고 이게 우리는 수성과 강전을 위해 근대화 추진의 기치아래 연간 백수10억「달러」 를 넘는 수출실적을 쌓아올렸다. 이것은 관민일체의 기운으로 구축한 대공적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차관이 몰고 온 공업이므로 우리는 그 빚을 갚아야 한다. 그러자면 배전의 노력과 각오가 있어야할 것이다.
여기에는 경제적 신장만을 설계해서는 안된다. 우리를 호시탐탐 넘보는 북한에 대한 국방과 국제경제에 수반하는 외교와 국민정신함양을 위한 교육과 전국민이 호응 공존할 수 있는 정치제도등이 정개적으로 화합해야만 비로소 수성과 강전을 함께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얼핏보면 국방과 경제, 이 두 가지가 가장 으뜸가는 과제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국민정신이 요지부동하게 정정되어야한다. 경제발전에 못지않게 범죄발전이 생기고, 정치신장에 따라 아부배가 속출하고, 문화향상에 곡학아세배가 난무하는 것은 정신이 썩어 빠졌기 때문이다.
국가의 기운이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춘추대의를 부르짖었고, 조광조는 격군심을 외쳤으며, 이율곡은 수시변통의 경장론을 창전했고, 정다산은 문무겸비를 주장했던바, 그 모든 것이 민유방본 본고방령이란 왕도정신에서 용솟음쳐 나온 것이다. 왕도는 패도와는 정반대로 이 왕도는 바로 민주공화도다.
모든것이 일진일퇴하면서 변천한다. 화무십일홍이요 세불십년이다. 그래서 「역경」 에서는 태괘와 부괘를 대대시키고 있다. 자연도 그렇고 인간도 그러며 국가도 그렇다.
그러나 인간에는 당위가 더욱 긴요하다. 수수방관하에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80년대를 향하는 우리에게는 이제 건설의 도약이 필수하고, 분단된 남북의 통일이 요청될 따름이다. 필자=연세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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